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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말하는 ‘CEO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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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필 지휘자 벤자민 잰더 e메일 인터뷰

진정한 리더십이란 조직원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

위계질서부터 깨야…한국 기업도 가능

중앙일보

세계적인 리더십 강연자이자 미국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벤자민 잰더. [본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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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부터 깨라.”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조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법이다. 위계질서를 깨야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변하고, 성과로 이어진다. 세계적인 리더십 강연자이자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벤자민 잰더의 제안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기업 최고경영자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건 지휘와 경영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다. 최근 e메일로 리더십에 대한 잰더의 생각을 들어봤다.



Q : 우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A : 나는 약 20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이란 연주자들에게 내 의지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휘자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연주자가 낸다. 그럼 내 뜻을 강요할 게 아니라 연주자의 힘과 열정, 사랑을 끌어내야 한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Q : 카리스마 있게 리더의 뜻을 관철하는 것도 효과를 낼 수 있지 않나.

A : 맞다.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구성원들이 두려움, 불안, 분노를 느끼게 된다. 결국 조직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표현할 수 없다.


잰더는 대리석 조각에 빗대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조각하는 건 쉽다. 모든 대리석 안에는 이미 훌륭한 조각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는 불필요한 돌을 제거해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Q : 그럼 구성원들이 능력 발휘를 하도록 도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A : 무엇보다 위계질서를 깨야 한다. 나는 내 연주자들에게 흰 종이를 주고 “우리의 연주와 내 지휘에 대해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심지어 보스턴 필하모닉 유소년 오케스트라의 가장 어린 연주자(12살)에게도 그랬다. 처음에는 연주자들이 어색해하면서 인사치레로 가득 찬 쪽지를 보냈지만,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 반영하니 점차 활발하게 제언이 올라왔다. 이를 통해 연주자들의 수동적인 태도는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Q : 한국 기업은 위계질서가 매우 강하다. 오케스트라는 그렇다 쳐도 한국 기업의 위계질서를 깰 수 있을지 의문이다.

A : 세상에서 가장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은 오케스트라다. 연주자들은 지휘자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나는 그런 위계질서를 깨봤다. 한국 기업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흰 종이를 주고 건의사항을 받는 것뿐만이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미소를 보내거나 새로 낳은 아이에 대해 질문을 해도 효과가 있다. 좋은 성과를 보이는 직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격려를 해도 된다. 질병, 재산 손실 등으로 괴로워하는 직원이 있다면 위로를 건네보라. 위계질서를 깬 회사는 조직원들의 타고난 재능, 통찰, 열정을 끌어낼 수 있다.
중앙일보

세계적인 리더십 강연자이자 보스턴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벤자민 잰더. [본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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잰더는 진정한 리더십을 실현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쉽게 설명해달라.

A : 우선 ‘측정의 세계’는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측정의 세계에선 모든 걸 평가한다. 그런데 돈, 권력, 자원 등은 한정적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투쟁한다. 반면 ‘가능성의 세계’는 상상의 개념인데,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이다. 가능성의 세계에선 경쟁이 필요 없고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원하는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회사의 직원들을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대학교수기도 한 잰더는 음악학도들을 가르치며 ‘가능성의 세계’를 적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첫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여기 있는 학생들 전부에게 A 학점을 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지금이 학기 말이라고 상상하면서 ‘내가 A 학점을 받은 이유’ 주제로 교수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수업이었다면 학생들은 A 학점을 받기 위해 경쟁자를 이기는 데에만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잰더씨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일찌감치 A 학점을 받았기 때문에 경쟁할 생각 없이 자신의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Q : 그런데 한국 기업에선 경쟁이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쟁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

A : 물론 경쟁은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경쟁이라면 조직원들은 즐겁게 성장할 수 있다.




Q : 다 좋은 이야기이고 머리로는 공감이 되는데, 막상 실천하려면 힘이 들 것 같다.

A : 맞다. 실천은 어렵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연습, 연습, 연습하라. 그리고 가급적 발전을 가이드해줄 코치를 구해보라.




Q : 음악만 해도 바쁠 텐데 기업 등의 리더십 강의를 부지런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 나는 지휘와 강의를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휘자라는 뜻의 ‘마에스트로(maestro)’는 교사라는 뜻도 갖고 있다.




Q : 근황은.

A : 최근 베토벤 9번 교향곡 음반을 발매했다. 이번 음반 발매는 내 음악가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일 것 같다. 평생 베토벤의 악보를 연구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에 대한 잰더의 철학은 저서 『The Art of Possibility』에 자세히 담겨 있다. TED(미국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 영상 ’벤자민 잰더, 음악과 열정에 대하여’를 참조해도 좋다.

잰더는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1965년 미국 보스턴에 정착해 지휘자 생활을 시작했고, 1967년부터 2012년까지 뉴 잉글랜드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했다. 1978년 보스턴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설립했으며, 2012년 보스턴 필 하모닉 유스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현재 기업 등에서의 리더십 강연도 활발히 하고 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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