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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진실된`과 `진실` 그 사이에서, 연극의 본질 묻는 연극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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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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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3] 방금 성황리에 첫 공연을 마친 희곡작가 스카르파가 볼로디아를 방문한다. 볼로디아는 10년 전 스카르파의 첫 작품에 혹평을 가한 비평가. 작품평을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스카르파 앞에서 볼로디아는 오늘 공연에 대해 짧은 비평문을 쓰지만 스카르파는 그의 신랄한 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볼로디아는 스카르파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설득을 시작한다.

연극 '비평가'의 작가는 '맨 끝줄 소년'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다. 성공한 극작가 스카르파와 유명한 비평가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의 신작을 두고 치열하게 부딪친다. 2017년 초연 무대에 이어 올해 재연 앙코르 무대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초연 당시 남성 2인극을 재연 무대에서 여성 2인극으로 배역의 성별을 뒤바꾸었다. 보다 재밌는 건 여성 캐릭터로 각색 없이 여성 배우들이 남성 역할을 그대로 연기하게 한 점.

극단 신작로 측은 "2017년 초연이 비교적 사실적인 스타일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인물에 대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주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고 했다.

초연 김승언-이종무 콤비에 이어 백현주-김신록 콤비가 이번 재연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쳤다. 여성 배우들이 남성 배역을 연기함으로써 관객들은 인물과의 확실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전의 남성 배우들의 무대 때는 마치 주먹다짐처럼 치열한 대사의 오고감에 눈길이 갔다. 연출과 비평가 두 지식인의 논리 대결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적 유희를 느끼게끔 했다. 특히 스카르파가 쓴 권투선수와 그의 제자를 다룬 2인극을 두 사람이 함께 읽으며 '극중극'을 펼칠 때는 정말 실제 말로 권투라도 벌이는 듯한 박진감과 긴장감이 객석을 몰입시켰다.

하지만 두 여성 배우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대사는 보다 그 아래 은유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남성 2인의 목소리로 전개될 때는 두 사람이 가장 세게 부딪치는 초반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보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여성 2인극에서는 후반부 스카르파의 소설 속 '맨발의 여인'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다.

원작자 마요르가는 이 작품을 '메타드라마'(연극의 본질을 묻는 연극)로 정의한다. 이 '맨발의 여인'은 어찌 보면 메타드라마란 형식의 핵심이다. '비평가'는 연극의 '진실됨'에 대한 이야기다. 볼로디아는 '연극은 진실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좋은 연극의 절대적 기준이라 생각한다. 그는 볼로디아의 극 중 인물 중 '맨발의 여인'을 거짓되고 피상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 '맨발의 여인'은 후에 스카르파가 현실에 있는 볼로디아의 연인을 실제 관찰해 옮긴 캐릭터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지막 순간 치열하게 대립하던 비평가와 연출가는 사라지고, 오로지 무대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맨발의 여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찬다. '진실된' 연극은 무엇인가. '진실된'과 '진실'은 과연 같을까.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남성 캐릭터가 주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분명 있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와 원로 비평가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들을 남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원작의 내용은 여성 배우들에 의해 독특한 울림을 획득한다. 여성의 신체와 목소리로 구현하는 남성 역할은 우리에게 텍스트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 예술과 삶의 가장 구체적인 지점에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이번 작품에서 백현주, 김신록이라는 두 여성 배우의 연기는 극의 핵심이다.

초연 무대와 재연 무대는 완전 다른 연극이라 봐도 무방하다. 재미는 초연 무대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원작자의 의도는 재연 무대에 더 가까울 듯하다.

8월 17일~9월 1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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