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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빨간날] 여성에겐 반말로… 성별 따라 다르게 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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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근데 왜 '반말'이세요?-①] TV 광고·드라마 등에서 여성→남성 '존댓말', 남성→여성 '반말' 사용 빈번… 심지어 '고객'일 때도 반말 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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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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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은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에는 성차별이 만연하며, 이것이 언어에 반영돼있다고. 그는 "언어는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라며 "남성은 사람으로 지칭되지만 여성은 여성으로만 지칭된다"고 지적했다.

예시로 로댕 작품 '생각하는 사람'(생각하는 '남성'이 아니다), 앵그르의 작품 '욕탕의 여인들'(욕탕의 '사람들'이 아니다) 등을 들었다. 또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은 '형'이나 '오빠'가 아닌 '의사'로 불렸으나 유관순 열사는 오랜 기간 '누나'로 불린 점을 지적했다. 그마저도 여성이 부르는 '언니'가 아니라 남성이 부르는 '누나'가 선택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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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왼쪽), 앵그르의 욕탕의 여인들(오른쪽) /사진=위키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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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곳곳에 반영된 성차별적 인식은 위 같은 단어의 사용에서 뿐만 아니라 반말이나 존댓말 등 경어(敬語) 사용법에서도 드러난다.

◇여성→남성 '존댓말' vs 남성→여성 '반말'?

어떤 관계의 위계 구조는 반말과 존댓말 사용으로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경어 사용으로 성별 위계를 세우는 일이 빈번히 발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해 7월 한 달간 등록된 지상파, 케이블, 인터넷·극장·바이럴을 통해 방영된 광고 343편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성차별 광고(37편)는 성평등 광고(7편)에 비해 약 5배 이상 더 많았다.

성차별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됐는데, 그중 하나가 존댓말·반말 사용을 통해 위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성은 부부나 동료 등 같은 사회적 지위를 지녔을 때에도 남성에게 존댓말로 대했다. 직장 상사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도 대부분 남자로 그려졌다.

한 신경치료의학회의 라디오 광고는 이 같은 성차별 광고의 예시로 꼽힌다. 광고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부부 관계지만, 여성은 남편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영감, 식사하세요." "이상하네, 팔에 힘이 없어." "얼굴이 한쪽만 축 처져 있네. 구급차 부를게요." "무슨 이런 일로 구급차야. 괜찮아." 등이다.

한 제약 회사의 라디오 광고에도 유사한 성차별적 경어사용이 담겼다. "여보, 요즘 당신 건강이 걱정이에요." "역시 당신이 제일이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이 약 제때 잘 챙겨드세요."

외화 더빙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빈번히 나타난다. 2006년 한국여성민우회는 KBS 1·2 MBC SBS 등 지상파 4개 채널에서 방영된 27편의 외화더빙을 모니터링한 뒤 남녀 부부관계나 연인관계가 나오는 15편의 영화 가운데 80%인 12편에서 여성 배우자 또는 연인이 자신의 남성 파트너에게 존댓말을, 반대로 남성은 여성 파트너에게 반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영화 '투모로우' 더빙판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샘, 성적표가 왔는데 알아? 미적분이 F야." "알아요, 성적표 봤어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은 대부분 누구에게나 하대를 했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은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썼다. 시대극을 배경으로 한 영화 '파 프롬 헤븐' 더빙판에서 집주인(여성)은 정원사와 가정부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했고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반면 '스타워즈'의 남성 캐릭터 '솔로 선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반말로 하대했다.

민우회의 모니터링로부터 10여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6년 7월 방송된 KBS 2TV '여자의 비밀' 16회에서 등장인물 유강우-채서린 부부는 "무슨 일이지?" "나가요. 엄마가 이 앞에 오셨다고 해서요."라는 대화를 나눈다. 첫번째 화자는 남자, 두번째 화자는 여자다.

◇손님이어도, 여자면 '반말'?

문제는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도 여성 고객은 '반말 응대'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의 여성들은 본인이 돈을 내고 서비스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반말 응대'를 당했고, 이후 남성인 손님에게는 '존댓말 응대'하는 모습을 봤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이모씨(25)는 "얼마 전 역 앞 분식 트럭에서 떡볶이를 구매하는데, 판매하는 50대 아저씨가 '저것 집어서 여기에 놔' '그건 그렇게 하면 안되지. 거기 말고. 여기' 등 반말로 응대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 바로 다음에 온 30대 정도의 남자 손님에게는 존댓말로 '여기 있습니다' 하는 걸 봤다"고 밝혔다.

얼마 전 프랜차이즈 '엽기떡볶이'도 여성 고객 상대 반말 응대로 입길에 올랐다. 지난 4일 성인 여성 A씨는 친구와 함께 평소 즐겨 찾던 동대문엽기떡볶이 약수점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반말 응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카운터에서 떡볶이를 주문하는데 40대로 보이는 사장이 "무슨 맛?"이라면서 반말로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자가 주문할 때는 사장이 존댓말을 썼다. 남자 고객에게는 존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화가 났다"고 온라인에 글을 남겼다.

택시를 탄 여성 고객에게 남성 택시기사가 반말 응대를 하는 일도 다반사다. 프리랜서 신모씨(28)는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바로 하대를 하더라"면서 "(여성)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데 자꾸 끼어들어서 반말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 왜 그걸 모르냐'면서 가르쳤다. 내가 내 돈을 내고 탔는데 왜 반말로 하대를 받아야하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인숙 건국대 여성학 교수는 "세계의 절반은 여성이며, 오히려 여성의 수가 더 많다. 그럼에도 여성에게 대뜸 반말을 하는 등 예의를 차리지 않는 이유는, 여성들이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여성을 약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을 '성별'로 보지 말고, 한 인격체로 바라본다면 당연히 존중하는 태도와 존댓말이 나올 것이다. 점차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태도를 가지는 사회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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