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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IMF에 SOS 칠 만한데, 에르도안은 “주권 포기하는 행위”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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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IMF 외 지원 받을 곳 없지만

이사국 미국의 구조조정 요구 걱정

국민에게 ‘굴복’ 이미지 줄까 우려도

중앙일보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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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리라화 급락에서 시작된 위기가 세계 주요 증시와 신흥시장을 흔들자 터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터키가 지난 5월 IMF 문을 두드린 아르헨티나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IMF 체제에 대해 “정치적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터키는 15일(현지시간) 미국산 자동차·주류·담배 등에 매기는 관세를 두 배로 올리는 보복 관세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 관세는 120%, 주류는 140%, 잎담배는 60%까지 인상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데스먼드 라흐만 박사는 14일(현지시간) “터키는 이제 IMF에 전화를 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터키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라며 “아르헨티나 경우처럼 결국 IMF가 터키 사태에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터키의 대외 부채 의존도는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터키 외화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3%를 넘는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이보다 높은 70%로 보고 있다.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갚기 위해 터키는 내년까지 2000억 달러를 빌려야 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초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이로 인해 터키가 갚아야 할 빚 규모는 더욱 늘었다.

터키는 IMF 이외에는 금융 지원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이미 터키에 거액을 대출한 유럽 은행들은 몸을 사리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번 리라화 급락 사태가 미국과의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도울 가능성은 적다.

그런데도 터키는 IMF 구제금융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IMF 대변인은 지난 10일 “터키로부터 금융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고, 터키가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도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IMF가 요구하는 구조조정과 개혁, 긴축정책에 응하는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IMF 체제는 터키 경제가 가장 나빴던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IMF의 요구에 따라 복지 지출을 줄이고 공공 서비스 요금과 세금을 올리면 국민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라흐만 박사도 “터키가 IMF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게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IMF 최대 출자국이자 이사회 멤버인 미국이 터키 지원에 동의할지도 불투명하다. 물론 미국이 IMF를 통해 터키를 통제하기 위해 지원에 동의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터키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 폐기와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국으로선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터키 총리에 올라 11년간 재임한 뒤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장기집권하면서 올해 40세인 사위를 재무장관에 앉히는 등 대통령 일가가 경제를 장악했다. 과도한 대외부채를 일으켜 교량과 터널 등 대형 건설 사업을 벌이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오게 됐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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