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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비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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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3년 전 찾았던 이비사섬, 다시 가고 싶지만

이제 휴가 땐 멀리 가기보다는 머무르기를 하고 싶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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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5일 토요일 <이비사>






왜 이비사였을까?

연초에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를 읽다가 스페인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하자 후배가 한 장의 클럽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비사를 가야 해요.”

클럽의 어둠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밤새 어울려 춤추다 사랑에 빠질 꿈도 없는 나는 그저 섬이어서 이비사를 택했다. 그리고 지중해니까. 온몸으로 지중해를 느끼려면 사면이 바다여야 했다.

아침 일찍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가 이비사행 비행기를 탔다.

이비사섬 남서쪽에 위치한 칼라콤테 해변이 제일 예쁘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무작정 향했다.

차로 30분쯤 운전해 도착한 칼라콤테는 천국이었다. 그제야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에메랄드빛 가득한 바다와 진한 황갈색의 절벽. 그 사이에 펼쳐진 모래사장. 모래사장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

절벽 위에 자리잡은 카페(라고 하기엔 마치 자연의 일부 같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샹그리아 1ℓ를 시켰다. “잔은 두 개.” 혼자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척했다.

파란 파도 소리를 들었다. 바람을 맞았다. 샹그리아는 생각보다 독주여서 금방 취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샹그리아와 바다에 취했다.

취하면 바다에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잠을 잤고, 잠이 깨면 다시 샹그리아를 마셨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하자 마음이 느슨해졌다. 그렇게 느슨해지고 느슨해져서 무심해질 때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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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찾았던 지중해의 섬, 이비사에 있는 3일 동안 칼라콤테 해변을 세 번 찾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했던 다짐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걷고 싶으면 걷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여러 곳을 다니기보단 칼라콤테에 집중했다. 언젠가 또 스페인을 간다고 해도 꼭 이비사섬, 그중에서도 칼라콤테 해변을 찾을 거다.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기’와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자에 가까워졌다. 어렸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기자 일을 시작한 뒤로 돌아다니기보다 머무르기가 좋아졌다. 취재하면서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 출장이다. 한 번은 폭염 취재를 하러 광주에 갔고, 지금은 예멘 난민 취재를 하느라 제주도에 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한곳에서 가만히 최대한 오래 앉아 있고 싶다. 그래서인지 3년 전 스페인이 마지막 해외여행(출장을 제외하고)이었다.

본격적으로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휴가 어디로 떠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갸우뚱한다. 휴가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다. 나에게 휴가는 ‘가는’ 것이 아니라 ‘갖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강의 듣고 책 읽으려고 해요”라고 대답하면 이번에는 상대방이 갸우뚱한다. 그에게 휴가는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휴가가 낯설 수밖에.

휴가 때 연인이나 친구, 가족이 싸웠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머무르기’와 ‘돌아다니기’의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충돌한다면 사이좋게 올해는 머무르고 내년에는 돌아다니면 어떨까.

싫다고? 올해도, 내년에도 마음대로 하겠다고? 그래, 그러면 계속 그렇게 혼자 살면 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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