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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계엄은 늘 우리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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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합법적으로 관리되는 군의 <계엄실무편람>…

계엄 개시부터 자의적 판단 쿠데타 위험 상존



계엄의 변질

독재자는 계엄으로 독재를 연장하고 계엄 속에서 숨을 거뒀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소장은 쿠데타의 성공과 함께 반공을 국시로 내건 계엄으로 19년 장기집권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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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실무편람>(<편람>)이란 게 있다. 2016년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편람>은 2018년 현재에도 유효한 계엄 지침이다. “전시·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편람>은 계엄의 세상을 여는 황금 열쇠를 군에 쥐여준다.

2016년 4월 합동참모본부에서 일부 개편돼 현재의 <편람>이 만들어지고, 그해 8월 을지연습을 통해 군을 포함한 정부 부처에서 모의 시행됐다.

을지연습은 계엄 연습

그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겨레>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수면 위로 올렸다. 국정 농단의 실상이 잇따라 드러났다.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연인원 1500만 명이 넘었다.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지만 평화의 대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12월9일 탄핵 의결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해를 넘긴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동안에도 질서는 기적처럼 유지됐다. 촛불혁명 시기, 그동안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문건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난 한 달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가정을 달리해보자. 기무사가 아닌 합참의 계엄 지침이 실행됐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현재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을까.

계엄은 멀리 있지 않다. 2018년 현재라도 그 누군가가 실행을 위해 <편람>을 펼칠 때 계엄은 현실이 된다. 해마다 연습해온 대로 일사천리다. 문제는 그 ‘누군가’다. 우선 계엄 절차가 시작되도록 추동하는 것, 그것을 결심하고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군’이다. 정확히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합동참모본부의 군사지휘본부다. 그 안에는 ‘계엄선포 통합결심지원체계’(Integrated Decision Support Framework)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개념 기구다. 필요시 작동되는 태스크포스(TF)라고 보면 된다. ‘계엄이 필요하다’는 판단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현재 상황이 그 기준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판단도 이 기구의 몫이다.

현행 계엄에서는 “결심이 충족되면 국방부에 계엄 선포 검토를 건의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결심-검토-건의 단계는 사실상 하나다. 합참에서 결심이 이뤄지는 순간 검토와 건의는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계엄 선포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다. 선포 권한은 계엄 개시를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기도 하지만, 현행 계엄 지침 안에서는 요식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건의가 단순히 조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내가 계엄의 전국 확대를 포함한 시국수습 방안을 건의했다”고 했다. 권한대행이던 최규하 대통령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김종필 전 총리조차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계엄 확대를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다시 시계를 되돌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 중 누군가가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계엄을 ‘건의’했다면 황 대행이 이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심판 결정 뒤 며칠 동안 청와대를 ‘점거’하고 나오지 않았다. 그때 계엄이 선포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군이 결심만 하면 계엄 집행 일사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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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를 갖춘 현행 계엄 지침에서 군의 자의적 판단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계엄을 결심하는 ‘조건’조차 군이 결정한다. 계엄사령부 운영 예규를 보자(문제가 된 기무사의 계엄 문건에도 존재한다). 계엄 결심의 조건이 될 첫 질문은 이렇다.

“(만약) 군사작전 준비와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가?”

질문부터가 군의 의도를 담았다. 이미 군은 공공질서를 위해 ‘스스로’ 결심하고 개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물론 답을 곧바로 내는 것은 아니다. 핵심 평가 요소도 존재한다.

군은 계엄을 위해 과격 폭력시위, 폭동 발생, 경찰서 피습, 무기 탈취, 청와대 등 주요 시설 점령 시도, 국지 도발 및 특작부대 침투,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정부 기능 유지에 제한이 없는가(공공기관 피습으로 기능 마비/경찰 병력 근무지 이탈 등 치안 유지 제한)와 계엄 임무를 수행할 군의 능력은 충분한가 등을 주요하게 따진다. 얼핏 보면 나열된 항목들은 사회질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항목 하나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기 힘들다. 첫 번째 항목부터가 문제다. ‘과격 폭력시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시위’는 차치하고라도, ‘과격’과 ‘폭력’의 기준이 무엇인지 현재의 계엄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쇠파이프나 화염병이 등장해야 하는지, 그렇게 됐다면 그 규모나 상황은 어때야 하는가. 모든 것은 군의 판단에 달려 있다. ‘폭동 발생’도 마찬가지다. 인명 피해, 재산 피해의 정도와 규모에 대한 판단도 결국 군이 한다.

2016~2017년 촛불집회 시기 기무사에서 작성한 계엄 관련 문건을 보면, 주요한 계엄 결심 조건 가운데 하나는 ‘청와대 등 주요 시설 점령 시도’였다. 이는 <편람>에 담긴 계엄 지침도 다르지 않다. 불법적인 계엄 문건을 만든 기무사든, 현재의 합법적인 계엄 지침을 따르는 합참이든 촛불 시민들이 청와대 행진 중 점령을 시도할지 판단하는 방법은 동일하다. 우국충정에 따라서다. ‘점령’이 무엇인지, 어떤 행위까지 시도인지, 청와대 담에는 얼마나 가까이 가면 되는지, 아니면 담을 넘어야 하는지, 그것은 몇 명이어야 하는지…. 답할 수 없는 질문 속에서 임의로 답을 내릴 여지를 주는 계엄의 조건은 어느 순간 희극이 된다.

이와 관련해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계엄의 시작부터 외부의 견제 없이 자의적 결심이 작용한다는 것은 현재 군이 주도하는 계엄이 얼마나 민주적 정당성과 거리가 멀고 위험한지 보여준다”며 “이는 (기무사의 불법 계엄 문건이 아닌) <편람>에 따른 현행 계엄 지침을 따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판단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지난 촛불집회 당시 행진 중 일부 참가자의 동요가 있을 때 계엄은 현실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이 시작되면 곧바로 포고령과 함께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고 계엄 수행 과정은 사실상 군정이 된다. 군은 <편람>에서 “계엄법이 계엄 선포지역 안에서 특별법의 지위를 가진다”는 이유로 현행 계엄법이 충돌되는 모든 법령에 우선함을 밝히고 있다. 계엄사령관의 지위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법무실은 2012년 <편람>을 개정해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국무총리보다 우위에 있다”고 기술했다. 지침대로라면 사법부보다 우위에 서는 것도 당연하다.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모든 사법 사무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2012년 개정 때 “계엄사령관이 국무총리 우위”

이를 위해 계엄사령부는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 장교 신분의 계엄협조관을 파견한다. 계엄 지역 안의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은 계엄협조관을 통해 계엄사령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는 것이다. 행정·사법 기관만 장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법 또한 예외가 아니다. 포고령 덕분이다. 현행 계엄은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 행사를 위해 포고하는 계엄시행상 법령과 같은 조치문으로 계엄사령관만이 공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포고령은 곧 법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포고를 위반할 시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하고 엄중처벌한다”는 내용까지 더해지면 계엄사령관은 포고령으로 현행 형사법 체계를 뛰어넘어 군림한다. 사령관은 여기에 긴급시 즉시 추인 조항(계엄법 시행령 제4조 1항)으로 날개를 단다. 긴급 여부에 따라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포고 권한을 합법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포고령 내용은 정치 집회, 유언비어 날조 유포 등 언론·출판, 반국가단체의 조직 등 결사·단체행동, 직장 이탈·태업·파업 등 결사·단체행동, 야간 통행 등으로 구성된다.

앞선 결심 조건처럼 여기에도 군의 주관적·자의적 판단은 계속된다. 이를 토대로 검거의 기준과 범위가 결정된다. 문제가 된 기무사 계엄 문건상 국회의원 검거 계획은 합법적이라는 현행 계엄 지침 안에서도 어렵지 않다. 사령관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이나 합참의 <편람>이나 주요하게 다루는 항목이 있다. 바로 “민심 안정과 여론 순화를 위한 언론·출판 현장의 검열”이다. <편람>이 기무사 계엄 문건보다 순화된 형태로 보이지만 포고령을 위반하면 결국 매체는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언론을 바라보는 군의 시선도 불신으로 가득하다. 이는 현행 계엄 지침(<편람>)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1)기사 속에는 특이한 내용이 숨어 있을 수 있다 2)삭제할 내용은 예상하지 못한 구석진 곳에 있다 3)본문 내용과 분량보다는 요약 기사, 표제의 내용과 단수에 관심을 가질 것 4)논설, 칼럼, 만평, 난해한 기사 등 숨겨진 진의를 정확히 파악해 조치. 특히 만화의 경우 한 장만 아니라 여분을 더 가지고 있다고 예측 5)문화 및 스포츠면 등 검열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에 교묘히 기사를 포함해 보도하는 경우를 각별히 유의 6)기사 마감시간 및 심야 취약시간을 이용해 기자가 조속히 검열해줄 것을 재촉한다고 해서 이에 말려들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면밀히 검토(이하 생략)”

계엄 해제, 국회는 늘 무력했다

계엄의 개시에서부터 내재된 군의 자의적 판단 문제는 계엄 종결에서도 나타난다. 현행 계엄 지침인 <편람>에는 종결 절차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이는 기무사 계엄 문건들도 마찬가지다. 종결을 위한 유일한 규정은 헌법이다. 헌법 제77조 3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조항도 무력화될 수 있음이 이미 지난 7월 공개된 기무사 계엄 문건에 담겨 있다. 기무사는 국회의원을 체포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무력화할 계획을 세웠다. 이 조항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영구집권을 위해 만든 유신헌법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이후 세 번의 계엄령이 있었고 계엄 해제 요구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국회 의결로 해제된 경우는 없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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