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부터 네 차례 北 취재…펴낸 책 '평양의 시간은~' 文 대통령 여름휴가 도서목록에
진천규 평양순회특파원/김승호 기자 |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 이 단순한 태도가 남과 북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빨갱이(공산주의자를 낮춰 부르는 말)다.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살아있는 현실에서 지난 1년새 북한을 네 차례나 다녀왔으니 말이다.
2010년 5·4 조치 이후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단독 방북취재를 한 진천규 평양순회특파원.
그가 지난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북한 곳곳을 취재하기 위해 오고가는 사이 '불바다' 위기에 처했던 한반도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되는 등 상황이 180% 급변했다.
그동안 북한을 취재하고 전한 그의 이야기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초 대전 계룡대에서 휴가를 보내며 진 특파원의 방북취재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읽기도 했다.
"이제 누구나 서울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고 옥류관 냉면을 먹고, 평양에서 전주비빔밥과 부산 돼지국밥을 먹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진 특파원을 만나 그가 전하는 평양, 북한, 그리고 통일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북한을 네 차례나 취재했다. 8월에도 추가 방북이 예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사진기자를 한 이후 미국에서 10여 년간 언론인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미국 영주권자이기도 하다. 1992년 당시 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방북했었고, 2000년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평양을 다녀왔다. 그리고 17년만인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미언론인들과 방북 취재를 추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행정명령을 내려 미국 시민권자였던 재미언론인들은 북한 방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북을 갈 수 없게 된 선배들에게 '기필코 방북을 원한다'고 내가 의사를 밝혔다. 나라도 북쪽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전달해야한다고 생각해 혼자 방북 취재를 하게 됐다."
―어디 어디를 취재하고, 무엇을 봤나.
"평양,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등을 취재했다. 평양에선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고, 출근길 풍경과 대동강 산책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맥주집, 이태리음식점과 슈퍼마켓, 이발소, 신발공장, 교회 등에선 일반인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양 려명거리에 있는 고층아파트와 오래된 아파트의 살림집에도 들어갔다. 평양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선 외지인 최초로 시내 야경촬영을 했고, 옥류관과 청류관의 주방은 남쪽 사람에겐 처음 공개했다."
진천규 평양순회특파원/김승호 기자 |
―17년 만에 방북하게 된 소감과 또 과거의 북한과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나.
"'국적 남조선, 목적지 평양, 국경통과지점 평양, 신의주, 두만강'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별지비자에 파란색 스탬프가 찍혔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갈수도 있었지만 단동에서 평양으로 가는 국제여객열차를 이용했다. 북한 소속 열차를 타고 가면서 승객들의 모습과 차창 밖의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7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평양 시내에 자동차가 많이 보였고 특히 휴대폰을 쓰는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지난해 10월 방북 이후에도 최근까지 세 차례(지난해 11월, 올해 4월과 6월)나 북한을 더 다녀왔다. 진 특파원이 북을 자유롭게 오고가는 사이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그 사이 북한도 상황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또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지난해 10월과 11월은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미국과 북한이 막말을 주고받으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북한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했다. 북한 주민들이 많이 위축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쟁 좋아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도 평화를 바란다. 북한은 평화를 보장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핵을 먼저 포기하라고 요구해선 답이 안나온다.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바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나가야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 있다.
"2018년 1월1일을 전후해 북한은 분명 달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또 지난 4월2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내용(핵·경제 병진노선을 끝내고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김)에서도 충분히 알수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합의해 발표한 '4·27 판문점선언'에도 내용이 다 있다. 이후 열린 북미회담도 마찬가지다. 그게 북한의 진심이다. 남한이나 미국의 일부 세력이 (진정성을)받아들일 자세가 안된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북한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있는 회담에서 '밀(고)당(기는 것은)'은 기본이다. 북한은 누구의 말처럼 '땡깡'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알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 수 차례 취재를 다녀와 최근에 책을 낸 것도 북한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맞는 말이다. 남쪽에선 북쪽 사람들이 무조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쪽엔 마치 인권이 없는 것처럼 언론들은 이야기한다. 북한 인구의 1%도 안되는 일부 탈북자들을 통해서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탈북자들은 또 전체 탈북자의 1%가 안될 정도로 극소수다. 아직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말하고 있다. 환갑이 가까운 나도 어린시절 지나가는 미군들에게 '기브 미 초코렛'을 하며 받아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당시와 똑같다고 말하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이야기다. 공중파에선 아직도 30년전 북한 이야기를 하고, 꽃제비를 말한다. 북한사람을 아직도 늑대와 승냥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말과 글로 쓰면 믿지 않을 것 같아 직접 (북으로)가서 사진찍고, 영상을 촬영해서 보여준 것도 이때문이다. 내가 본 그대로 전달했다."
진천규 평양순회특파원/김승호 기자 |
―평양이나 원산 등 도외지를 주로 취재한 것 같다. 또 취재를 하면서 늘 안내원이 따라다녔기 때문에 보는 것도, 취재에도 다소 제약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북쪽의 기자가 남쪽을 취재한다고 하면 우린 어땠을까 생각해보자. (국정원 등)관계자가 늘 동행했을 것이다. 북한에선 (안내원이)따라다니면 안되고, 우린 된다는 말 밖에 안된다. 취재는 자유로웠다. 시골보다는 도시를 주로 다녔다고하는데 서울을 생각해보자. 이 서울에도 수 십억원씩 하는 고급 아파트가 있는가하면 더운 여름에도 선풍기 하나 제대로 켜지 못하고 버텨야하는 쪽방촌도 있다. 평양에도 서울과 같이 그런 차이가 있다. 대도시인 평양과 북쪽의 시골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수도인 서울과 지방 소도시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차이는 남쪽에도, 북쪽에도 모두 있는 것이다. 보이는 스펙트럼이 100이라고 하면 60에서 70정도는 (취재를 통해)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취재 중에 만난 북한 주민들이 남쪽에서 온 기자선생에게 상당히 적대적이라는 느낌을 책을 통해 받았다. 실제론 어땠나.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불신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하자.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외국기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엄청난 돈을 받았다고 남쪽 모 언론이 보도했다. 무책임한 보도였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묵은 호텔방이 얼마냐는 기사도 남쪽 기자가 썼다. 그러면 트럼프 호텔비 기사는 왜 안썼냐. 기자들 스스로 어떻게 (북한에 대해 보도)했는지 돌아봐야한다. 체제를 선전할 이유도 없다. 취재를 하겠다고 한 나에게 북한이 요구했던 하나는 바로 '제대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남쪽이 북쪽을 어떻게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하나.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북한에도 남한과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처럼 세 끼 먹고, 밤엔 잠을 자고, 때되면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을 한다. 왜 유독 북한 사람만 똑같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을 알아가면서 진 특파원 나름의 통일에 대한 생각도 정립돼 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통일은 어렵다. 형제자매가 커서 시집, 장가를 가면 한 집에 모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70년간 따로 산 북한과 합치려면 얼마나 따질 것이 많겠느냐. 그래서 통일은 놔두고 쉬운 것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남도, 북도 서로 이득되는 것부터 해야한다. 경제 교류를 하고, 이산가족부터 자주 왔다갔다해야한다. 다양한 문화교류도 마찬가지다.
진천규 평양순회특파원/김승호 기자 |
―통일TV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방송인가. 설명해달라.
"우리나라에만 케이블 방송이 200~300개에 달한다. 그런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에 유독 북한 전문 케이블채널이 없다. 반려견 등을 위한 방송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북쪽 소식은 특정 세력에 의해 정보가 차단돼 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북한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전부터 꾸고 있는 꿈이다."
―통일TV를 무슨 내용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특히 북한에 관한 방송은 실정법상으로도 상당히 제한적일 것 같다.
"남한은 자본주의고, 북한은 사회주의다. 엄연히 다르다. 남쪽엔 국가보안법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정치적인 주의주장은 방송에서 모두 배제할 계획이다. 역사물, 자연다큐멘터리, 북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 등이 통일TV의 콘텐츠가 될 것이다. 북에는 임진왜란, 임꺽정, 계월향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드라마가 많이 있다. 평양의 기생인 계월향은 50부작에 달한다. 백두산의 사계, 금강산의 동·식물 등과 같은 자연다큐도 다수다. 남한 국민들이 북한의 이런 영상물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방송 내용이 국보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원한다면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등으로부터 검열도 받을 계획이다."
김승호 기자 bada@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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