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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
한국반도체 인수해 ‘과감한 투자’
통찰·돌파력으로 반도체왕국 일궈
최종현 SK 선대회장
대한석유공사·한국이동통신 인수
M&A DNA 탁월···그룹기반 닦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전경련 회장 맡아 재계-정부 가교
스판덱스·타이어코드 글로벌 1위로
우리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후발주자로 치부했던 중국의 급성장 등으로 자동차·조선·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이 줄줄이 흔들리는 와중에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피해마저 우려된다. 안으로 눈을 돌려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비용 일변도의 규제 및 정책 리스크, 반기업 정서 등이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의 기가 눌릴 대로 눌렸다. 기업이 투자 및 고용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가 정신의 부활을 통해 야성을 살리지 않으면 한국호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원로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과 개척자 정신은 우리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며 “특히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잡기 위한 투자에 나섰던 기업인들이 더 떠오른다”고 말했다.
SK그룹의 경우 오는 24일이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20주기다. SK는 이날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추모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26일이 기일이지만 주말을 피해 앞당겨 진행하는 것이다. 이전 추모식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등 가족과 친지들만 참여한 가운데 비공개로 했지만 올해는 외부 인사를 초청하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달 중순부터는 계열사 사옥을 돌며 추모 사진전을 개최하고 식수행사 등도 예정돼 있다”며 “공개행사로 진행되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조용하고 조촐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대회장은 형인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의 뒤를 이어 현재 SK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중동 석유파동의 여파 속에서도 지난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현 SK이노베이션)를 인수하면서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도 완성했다. 특히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의 씨앗을 뿌렸다. 최 선대회장의 뛰어난 인수합병(M&A) 유전자는 아들인 최태원 회장까지 이어져 SK하이닉스·SK실트론·SK머티리얼즈 등의 인수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3일 현정은 회장의 방북으로 ‘왕회장’이라고 불렸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드라마’ 같은 일화들도 다시금 입에 오르내린다. 1998년과 2000년에 각각 500마리 남짓한 ‘통일소’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간 일은 ‘남북화해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기업가로서 정 명예회장은 우리 주력 산업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은 달랑 설계도 한 장 들고 그리스 해운업자 조지 리바노스를 찾아 26만톤급 유조선 두 척을 팔아치우는 기적을 낳았다. 그가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지 못했다면 한국이 자동차 강국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했다.
재계는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재계가 한층 위축돼 있는 데 대한 우려가 깊다. 재계와 정부의 가교역할을 맡아줄 인물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감지된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경우 2007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으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애써왔다. 은행권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며 그 대가로 적금 가입 등을 강제하던 ‘꺾기’ 관행에 대해 전경련을 방문한 국회의원 앞에서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영 측면에서도 조 명예회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89년 스판덱스의 연구개발(R&D)을 시작해 3년 후 세계에서 네 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사양산업이라고 치부하던 섬유사업이라도 독자 기술을 확보해 고수익 사업으로 키워낼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조 명예회장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였다. 효성은 조 명예회장의 이 같은 ‘선견지명’으로 스판덱스뿐만 아니라 타이어코드 등 4개 품목을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으로 갖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뢰와 뚝심의 경영 철학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LG의 배터리 사업이다. 1992년 영국 출장지에서 2차전지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연구를 지시한 구 회장은 적자가 2,000억원에 달할 때도 뚝심 있게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기차 배터리 등 중대형 2차전지 분야에서 LG는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반도체를 키웠다. 한국반도체 인수, 과감한 투자 결정 등 이 회장 특유의 통찰력과 돌파력이 아니었다면 현재와 같은 ‘반도체왕국’은 꿈꾸기 어려웠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 회장은 휴대폰 ‘애니콜’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자 1995년 구미 공장에서 500억원어치의 자사 무선전화기, 키폰, 팩시밀리 등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소각한 화형식을 거행했다. ‘보여주기’ 이벤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화형식 이후 이듬해 글로벌 휴대폰 메이커였던 미국의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갈수록 관료화돼 가는 현재의 기업인들을 보면서 이런 기업가 정신이 더욱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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