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함께 연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백두산', 가장 시급한 분야는 '공중 보건'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세인트존스대에서 폐막한 2018년 한미과학자대회(UKC)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와 미국과학진흥회(AAAS)는 '과학외교포럼'을 열고 남북 과학기술 분야 교류를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포럼에는 최근까지 북한을 직접 방문한 리처드 스톤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연구원과 말렛 메스핀 AAAS 과학외교센터 부센터장, 김명자 과총 회장, 김승환 한국과학기술외교포럼 회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
2011년 1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북한 운명의 산(백두산)에서의 불침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스톤 연구원이 사이언스 국제뉴스 편집장 시절에 직접 북한을 방문해 영국과 북한 과학자들의 백두산 현장 연구를 취재한 내용이었다.
백두산 아래 서울시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마그마가 존재한다는 이들의 연구 결과는 2016년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되며 화제가 됐다. 스톤 연구원은 "10여 년 전 백두산이 화산 운동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북측에서 해외 화산 과학자를 소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북측 요청에 따라 영국 과학자를 소개했고 북한과 함께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한 과학자들도 연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얘기조차 꺼낼 수 없었다.
스톤 연구원은 "지난 3월 두 번째 백두산 연구 협력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과학자들은 남한 과학자들과 함께 백두산을 연구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며 "남한 과학자들 역시 같은 생각인 만큼 협력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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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협력 연구는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 김명자 회장은 "백두산 연구는 북한의 비정부기구인 '평양 국제 새기술 경제정보센터(PIINTEC)'가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의 공동 연구 결정 여부는 PIINTEC 권한 밖"이라고 진단했다. 북한 입장에서 남북 문제는 국제 협력이 아닌 대내 협력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스톤 연구원은 "북한의 태도는 10여 년 전과 달리 크게 변하고 있는 만큼 남북 정부가 논의만 한다면 곧바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AAAS를 비롯해 유네스코가 후원하는 국제공동대륙지각시추사업(ICDP) 등도 남북 백두산 공동 연구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다. 김승환 교수는 "백두산 시추 연구는 아직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분야인 만큼 남과 북이 먼저 연구를 한다면 관련 분야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톤 연구원은 무엇보다 시급한 남북 공동 연구 분야로 '공중 보건'을 꼽았다. 북한 주민 사망 원인 중 감염병 사망이 30%가 넘고 기생충 감염 비율도 상당히 높다. 특히 결핵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의 신규 결핵 감염자 수는 2000년 10만명당 200명에서 2016년 513명으로 급증했다. 스톤 연구원은 "2015~2016년 실시한 북한 보건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 결핵 감염률은 10만명당 640명으로 추산된다"며 "1990년대 중반 북한에 장기간 기근이 이어진 뒤 결핵 박테리아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만약 치료제 부족으로 환자들이 필요한 복용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제내성 결핵균, 즉 슈퍼 결핵균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WHO에 따르면 2016년 북한 내 결핵 환자 13만여 명 가운데 5700명은 결핵 치료제 리팜피신을 포함해 최소 두 가지 이상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핵은 공기를 통해 전염이 가능한 만큼 이는 접경국인 중국이나 한국의 공중 보건에도 위험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스톤 연구원은 "북한의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했다"며 "추가 지원과 남북 교류 및 공동 연구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승환 교수는 남북 간 과학기술 교류가 또 하나의 외교 채널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5년 미국과 옛 소련이 우주에서 도킹하면서 냉전의 긴장을 녹였고 AAAS는 미국과 시리아, 쿠바 간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이어가며 대화 채널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 교수는 "가치 중립적인 과학에 대한 공동 연구는 정치를 떠나 두 나라가 협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며 "과학 외교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만큼 남북이 과학 외교 분야에서도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욕 = 장용승 특파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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