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요?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 일하고 있습니다. 열정은 돌도 뚫을 수 있습니다."
1977년 미국에서 자동차 윤활유 등 화학제품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벤처기업 '크리샌인더스트리'를 설립해 연 매출 500억원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재미 한인 벤처 1세대 고국화 대표(80) 얘기다. 고 대표는 올해 한미과학자대회(UKC)에서 '매일경제 회장상'을 수상했다. 매일경제 회장상은 매년 과학기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두거나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한인 사회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UKC가 열린 뉴욕 세인트존스대에서 만난 고 대표는 80세 고령에도 인터뷰 내내 '열정'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2006년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여전히 매일 오전 회사로 출근해 주 5일, 매일 8시간씩 컨설턴트 업무를 보고 있다. 2015~2016년에는 미국윤활학회(STLE) 에디터로 활동했고 최근까지 한국과 독일 등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해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 대표는 "내년에도 몇 개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며 "일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매일경제 회장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뻤다"며 "미국 한인 벤처 1세대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당부의 뜻으로 생각하고 한국과 미국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58년 전인 1960년 남편인 고광국 박사와 함께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 대표는 "더 많이 공부해 한국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말했다. 부부는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를 마친 뒤 고광국 박사는 엑손모빌에서 엔지니어로, 고국화 대표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메탈워킹루브리컨트에서 연구개발(R&D) 매니저로 일했다. 고 대표는 "수십 년간 공부한 화학공학 분야에서 우리만이 갖고 있는 특허기술을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1977년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은 고 대표 이름인 '국화(chrysanthemum)'의 영어 표현을 따서 만들었다. 사업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 대표는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에서 배제되는 일이 많았다"면서 "특히 골프를 치며 사업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는데 이런 사업 기회에 동참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어려웠던 사업 초기를 회상했다.
1970년대 대다수 자동차 회사는 경량화를 위해 부품을 철에서 알루미늄 등으로 대거 전환했다. 이때 크리샌인더스트리는 알루미늄 가공 시 발생하는 열을 제거 할 수 있는 '냉각수'를 개발하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고 대표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반드시 그들이 요구한 시간에 맞춰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며 회사를 운영해 나가자 조금씩 회사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크라이슬러와 포드 등 자동차업체 눈에 띄면서 납품 실적이 일취월장했다. 크리샌인더스트리는 1985년 올해의 중소기업가상, 2001년 올해의 기업상 등을 수상하며 미국에서 견고한 중소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직원이 1명도 없어 어려웠던 시절을 딛고 직원 30여 명과 연 매출 500억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워싱턴DC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고 대표 부부는 서울대 공대를 찾아 장학금 1억원을 쾌척했다. 고 대표는 "과거 우리는 어려운 시절을 거쳤지만 후배들은 더 나은 조건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란다"며 "젊은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얻은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미국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낀다"며 "이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뉴욕 = 장용승 특파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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