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취업 시장에선 '오와하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끝내라'는 일본말(終わる·오와루)에 '괴롭힘(harassment)'이라는 영어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다. 구직자들이 여러 기업에 붙어놓고 골라서 가니까 기업이 구직자들에게 "우리 회사에 붙었으니 구직활동을 끝내라"고 하는, 일종의 협박이다.
일본은 지금 사상 유례없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18년 봄 졸업생의 취업률은 대졸 98.0%, 고졸 98.1%다. 일본 취업 시장 현실을 설명해주는 지표로 '유효구인배율'이란 게 있다. 구인이 구직을 상회하는 비율로 1을 웃돌면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음을, 1을 밑돌면 반대를 의미한다. 2013년 5월 0.9였던 유효구인배율은 5년이 지난 올해 5월엔 1.6으로 뛰었다.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1.6배나 많다는 의미다.
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구직자들은 여러 기업에 중복 합격하게 되고, 회사를 말 그대로 '골라서' 간다. 기업은 구직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갖은 구애 작전을 펼친다. 인사팀은 청년 사원을 얼마만큼 확보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돼 결국 구직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구직자들은 '오와하라 기업 리스트'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제일 좋고,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는 게 구직자의 권리인데 왜 협박을 하느냐며 이런 회사는 피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오와하라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와 일본 경제 회복에 그 원인이 있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는 한 해 출생자가 200만명에 달했지만 지금 대학을 졸업하는 1990년대 후반생들은 120만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아베노믹스가 본격 효과를 발휘하며 일본 경제성장률은 2016년 1분기부터 8분기 연속 증가했다. 기업 실적도 크게 증가했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다 보니 구직자가 '갑'의 위치에 서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취업 시장은 우울하다. 올 상반기까지 취업자 수 증가는 10만명대 수준에 그쳤으며 6월 실업률은 3.7%, 청년실업률은 9.0%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증가율이 낮아지며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 2017년 3.1%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2018년 상반기 성장률도 2.9%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취업자 증가율은 올해 6월 기준 0.4%까지 하락했다. 경제성장과 고용이 괴리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인 제조업 고용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조선업 등은 구조조정 여파로 취업자 수가 급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혹자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우리나라도 20년 후에는 일본처럼 구인난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 사이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일본에는 든든한 내수시장이 있다. 또한 고용창출력이 큰 서비스업도 발달해 있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강소기업도 수없이 많다. 산업과 고용 간 괴리가 갈수록 심해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일자리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혁파해나가야 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을 옥죄고 있는 정책이나 규제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기득권을 타파하고 생명, 안전 분야 이외의 규제는 모조리 없앤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수출 대비 취약한 내수경기의 활력을 높이고 고용창출력이 큰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또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민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간 일자리 창출에 보다 과감한 세제 지원과 인센티브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대기업들은 임직원의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일본보다도 높은 신입 직원의 연봉을 낮추는 대신 그만큼 채용을 늘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여당에 대한 사상 최고 지지율, 한반도 안보 리스크 완화,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완벽한 SOC·IT 인프라스트럭처, 하면 한다는 오기, 극적인 순간에서의 양보와 타협 등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을 십분 발휘하면 일본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우리도 삼성, 현대, CJ, 네이버 등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오와하라 기업 리스트에 들어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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