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에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다. 꽃제비 출신으로 왼쪽 팔다리를 하나씩 잃은 채 탈북한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 대표 지성호 씨다. "희망의 상징"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개하자 지씨는 탈북 때 쓴 목발을 위로 들어 올려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 남자의 기구한 일생을 다룬 논픽션이 나왔다. '팔과 다리의 가격'(아시아 펴냄) 저자는 요즘 핫한 소설가 장강명이다. 5년 전 기자 시절 알게 된 지씨는 작가가 북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지씨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대기근이 일어나 약 33만명이 숨졌다고 통계청이 공식 발표한 '고난의 행군'이다. 이 숫자에 대해 실제 탈북자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최소한 100만명은 될 걸요? 시신이 길거리에 쌓여 있었다고요."
1982년 함경북도 회령 학포 탄광에서 태어난 지성호의 유년기는 고난의 행군 때 절정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을에서는 배급이 끊어진 뒤 매일 아침 이웃 누군가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았다. 1996년 석탄을 훔쳐 음식과 바꾸려고 지씨는 아버지 대신 화물열차에 올라탔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사고로 지씨는 한 손과 다리를 잃었다. 학포 병원에서는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했다. 목발을 짚고 꽃제비 생활을 하다 2006년 막냇동생과 함께 탈북했다. 목발을 짚고 밀림을 걸었다. 아버지는 탈북을 하려다 두만강에서 체포돼 목숨을 잃었다. 중국의 어두운 밤거리를 뚫고 라오스의 메콩강은 넘으며 이 청년은 북한 영화 '곡절 많은 운명'의 주제가를 불렀다. "사나운 파도를 넘어 네가 닿은 포구는 어디…."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작가가 책을 쓰게 만들었다. 지성호는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도 굶으면서 아사 직전의 소년에게 옥수수와 김치를 나눠주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씨는 지금도 팔다리를 잃은 사고 직후 방에서 한 달간 누워만 있던 시기를 기억한다. 처음 창밖을 봤을 때 강의 나무와 풀에 그는 감탄했다.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했고 얼마 뒤 아버지에게 목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아직 남은 팔과 다리가 있잖습니까. 그걸로 뭐든지 할 수 있다, 살아야겠다,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반도의 봄날'을 기원하는 시기에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다룬 책을 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담담하게 서문에 썼다. "나는 고난의 행군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집중하려 한다. 인간의 존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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