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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한몽 공동학술조사 20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몽골 초원에서 일어났던 유목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536점 문화재를 선보인다. 2018.05.15. / 뉴시스[중부매일 아침뜨락 류시호]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1231년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하여 28년 동안 무려 7번이나 혹독하게 싸웠다. 당시 고려의 왕 고종은 허수아비였고, 최고 권력자는 무신정권 최충헌의 아들 최우였다. 이때 용인시 처인성에서 승병, 의병, 군관민이 단결하여 승려였던 김윤후가 몽고군 총사령관 살리타를 사살했지만 우리나라 전 국토가 유린당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시회를 갔다. 이 전시회는 우리의 중앙박물관과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학 고고학 연구소, 몽골국립박물관, 공동으로 개최했다. 13~14세기 몽고는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와 남아시아 등 초거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14세기 중반을 전후해 붕괴된 몽고 제국은 초원으로 후퇴했으며, 17세기에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에 복속되었다가 110년 전에 독립을 선포하였다. 몽고는 청나라 시절 외몽고와 내몽고로 나누어졌다. 외몽고는 현재의 몽골로 한반도의 7.4배 크기에 인구가 3백만 명이고, 내몽고는 중국의 자치주로 한반도의 5배 이상 크기에 다른 민족과 함께 살고 몽고족이 6백만 명 살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천시하여 우매한 민족'몽고'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몽골로 나라 명칭을 사용한다. 칭기스칸이 세운 몽골에 로마 교황청의 사신들이 방문하여 고려(Korea)가 유럽인들에게 알려졌고, 고려는 고려자기·고려불화·고려인삼·금속활자·대장경·나전칠기 등 세계적인 명품 문화를 많이 만들어 냈다. 그리고 칭기스칸의 아들이 원나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중국의 발명품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을 서양으로 전파시켰다. 우리는 긴 세월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풍속과 문화를 주고받았다. 결혼식 때 신부가 사용하는 족두리, 연지, 곤지 등이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고, 마마, 수라, 무수리, 몽골간장 등도 있다. 원나라에서는 고려 여인의 옷, 신발, 모자가 유행했고 고려식 만두 같은 음식도 널리 전해졌다. 한편 우리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목화는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씨를 가져왔다. 통계를 보면 몽골은 양 1천300만 마리, 소 300만 마리, 말 250만 마리, 그 외 염소·돼지·닭 등을 합쳐 약 4천만 마리의 가축을 길렀다. 몽골인 1인당 가축 20마리를 소유하는 가축부자이다. 그리고 구리·몰리브덴·금·석탄·우라늄 등 세계 10위의 자원부국임에도 경제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낙후되어 있다. 요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벌어가는 돈은 몽골 GDP의 10% 수준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들이 몽골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류시호 시인·수필가우리나라도 40여년 전 까지 어렵게 살았다. 간호사와 광부들이 독일에 가서 험한 일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어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중동 사막지대의 건설현장을 누비며 가난을 이겨냈다. 8백 년 전 몽골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이룩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다. 현재 우리는 세계 250개국이 넘는 나라 중에서 6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 화려한 시절 몽골의 역사를 뒤돌아보니, 대한민국이 지금의 경제력을 지켜내고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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