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현직판사, 변호사시절 의뢰인 재판 맡아 승소판결…불공정 논란

댓글 7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석연찮은 재배당 통해 사건 맡아 옛 의뢰인 손 들어줘

법원행정처 "판사 제척사유 아냐" 해명도 논란…경위 조사 불가피

연합뉴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형로펌 출신인 현직 판사가 변호사 시절에 자신이 소송을 대리했던 은행의 민사사건을 맡아 이 은행에 승소판결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재판의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낳는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민사소송법에는 소송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있던 법관은 관련 재판을 맡지 않도록 하는 '판사 제척 사유'가 규정돼 있는데도 어떻게 재판을 맡았는지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이모 단독판사는 지난 2월 캐나다 교민 A씨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가 계좌이체와 환전 과정에서 은행직원의 실수로 4천711만원의 피해를 봤다며 낸 소송이었다. 이 판사는 "은행직원의 실수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하나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이 판사가 과거 변호사 시절 하나은행이 의뢰한 사건을 수임한 소송대리인이었다는 점이다.

이 판사는 2017년 2월 경력법관으로 임용되기 직전까지 하나은행이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하나은행 측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했다.

현행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이 판사는 법관으로 임용된 후에는 하나은행이 당사자인 재판을 맡을 수 없다.

민사소송법 41조는 '법관이 사건당사자의 대리인이었던 때'에는 재판에서 '제척'(배제)하도록 한다. 제척 이유가 있는 판사가 한 판결은 무효가 된다.

그런데도 이 판사는 A씨가 낸 소송을 배당받았고, 하나은행 측이 승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A씨 사건이 이 판사에게 배당되는 과정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당초 A씨 사건은 조정에 회부됐다가 2017년 4월 조정불성립으로 결론 났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은 정식재판을 위해 이 사건을 그해 5월 4일 민사 단독재판부 중 한 곳에 배당했다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5월 19일 이 판사에게 재배당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A씨 사건이 무작위 방식으로 다른 단독판사에게 배당됐다가 '고(高) 분쟁성 사건'으로 다시 분류돼 전담 단독판사인 이 판사에게 재배당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송청구액이 4천여만원에 불과하고, 복잡한 법리가 적용되지도 않는 이 사건을 '고 분쟁성 사건'으로 분류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또 재배당 과정에서 법원이 이 판사의 제척사유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이유와 이 판사가 스스로 재판을 기피하지 않은 이유도 해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도 법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A씨가 지난 4월 제척사유에 해당하는 이 판사의 판결이 무효라며 김명수 대법원장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에게 진정을 냈지만, 법원은 3개월이 지나서야 회신했다.

안 처장 명의로 지난달 12일 발송된 회신문은 "제척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해명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안 처장이 '해당 판사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 또는 절차는 법관에 임용되기 전에 대리했던 사건과 동일사건이거나 또는 이에 부수하는 절차가 아니므로 제척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 처장의 판단은 2002년 1월 민사소송법이 개정된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개정 전 민사소송법은 판사의 제척사유로 '법관이 사건에 관해 당사자의 대리인이 됐던 때'로 규정했지만, 이 규정은 '법관이 사건당사자의 대리인이었던 때'로 바뀌었다.

개정 전이라면 이 판사는 변호사 시절 맡았던 하나은행과 무역보험공사 간의 소송 내지 이와 관련된 소송에 한해 재판을 맡을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특정한 소송을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은행이 당사자인 소송 자체를 이 판사가 맡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법개정 취지에 부합한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법원 한 관계자는 "개정된 민사소송법은 문구 그대로 자신이 대리인이었던 당사자의 사건을 판사가 맡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며 "안 처장의 판단대로라면 판사의 제척사유가 너무 좁게 인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