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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빨간날]"게으르니 살찌지"…뚱뚱한게 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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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비만의 사회학-②]독박육아에 살쪘더니 "자기관리 못하니?"…면접서 "의지 약한 것 아니냐" 핀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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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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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안 일어났니? 그렇게 게으르니 살이 찌지."


"또 먹어? 그래 가지고 언제 살 뺄래. 그렇게 자기관리가 안되서. 쯧쯧."

고등학교 2학년인 한승주양(17·가명)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그의 키는 162cm, 몸무게 75kg. 신체질량지수(BMI)는 28.58로 '비만'이다. 고1 때 학업 스트레스로 살이 10kg 이상 쪘다. 특히 습관처럼 달고 산 편의점 야식, 탄산음료는 지방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반에서 중상위권 성적으로 공부도 곧잘 하지만, 1년새 자신감은 급추락했다. 이런저런 편견의 말들 때문이다. 어디서 "돼지야~"라고 부르면 돌아볼 만큼 이 소리는 일상이 됐다. 또 주위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비만'과 연결 지었다. 몸살로 아플 때도 "살 쪄서 자주 아프고 그런 것"이란 말을 들을 땐 서럽기까지 했다.

한양은 "공부한다고 독서실·학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살이 쪘는데,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취급한다"며 "게으르고 못났고 자기관리도 안되고 한심한 사람이 됐다"고 토로했다.

살찐 사람을 고개 숙이게 하는 사회 편견이 서럽다. 대다수가 '비만'을 여전히 개인 문제로 치부해 차별하는 것. 뚱뚱한 사람들은 자기 절제를 못하고 능력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성격까지 나쁘다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 하지만 이를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여기고 정부 차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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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지영 디자인기자



2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의 지난해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BMI 25 이상인 '비만유병률'은 2005년 31.3%에서 2016년 34.8%로 늘었다. 국민 3명 중 1명은 '비만'인 셈이다. 체질량지수가 30이 넘는 고도비만율도 2011년 4.3%에서 2016년 5.5%로 높아졌다. 특히 남성 비만율은 2005년 34.7%에서 2016년 42.3%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흔한 질병이 됐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살찐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그것. 이에 '비만' 보다 '비만을 바라보는 시선'과 싸우는 이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주부 유은정씨(34·가명)는 지난해 말 첫 아이를 출산한 뒤 몸무게가 8kg 불었다. 이후 육아에 전념하느라 밤잠도 설치고 끼니도 맘 편히 챙겨먹지 못했다. 운동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유씨 시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애 낳고 살이 많이쪘네. 자기관리를 못해서 그런다. 요즘 출산하고도 날씬한 애들도 많던데"라며 핀잔을 줬다. 그 말을 들은 뒤 유씨는 펑펑 울었다. 그는 "독박 육아 시달리는 것도 힘든데 뚱뚱해진 것도 한심하다 나무라니 서러웠다"며 "운동할 시간도 없고 밥도 그야말로 아무거나 막 먹는다. 비만이 왜 내 탓이냐"고 하소연 했다.

취업준비생 서모씨(27)는 지난달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빠듯한 생활비를 아껴 식욕 억제 한약까지 처방 받았다. 그야말로 살과 독한 전쟁 중이다. 다이어트 결심 계기는 한 기업 면접에서 들은 질문이었다. 한 면접관이 "본인이 왜 살을 못 뺐다고 생각하느냐. 의지가 좀 약한 것 아니냐. 회사 일은 잘할 수 있곘느냐"고 물어본 것. 이에 "의지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면접은 낙방했다. 서씨는 "살이 쪘다고 의지가 약한 게 아닌데 그렇게 보는 시선 때문에 속상했다"며 "살쪄서 불행하다고 처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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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이는 한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비만에 대한 편견은 사회 문제다. 관련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 연구팀은 지난 2015년 미국·캐나다·호주 등 28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비만'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응답자 50%가 '비만'을 꼽았다.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뚱뚱해지면 안된다"는 불안을 증폭 시킨다. 그래서 정상체중임에도 뚱뚱하다 인식하게끔 한다. 권진원 경북대 약대 교수와 박수잔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19세 이상 성인 4만3833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성 60.5%, 여성 66%가 정상 체중이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비율은 각각 39.5%, 40.6%에 불과했다.

닐슨이 발간한 '건강과 웰빙에 관한 글로벌 소비자 인식 보고서'에서도 자신이 과체중이라 인식한 한국인은 60%로 세계 평균(49%)보다 10%포인트(p) 더 높았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이어지도록 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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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비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비만을 더욱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비만->안 좋은 인식->편견·차별->대인기피, 운동부족->비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코네티컷 대학 러드 센터 레베카 M. 펄 박사가 비만 여성 24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응답자 79%가 '비만'으로 낙인 찍힌 뒤 과식을 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응답자 75%는 다이어트를 거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편견과 차별이 실제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강재헌 백병원 교수는 "비만인은 자기절제 못하고 맨날 누워만 지내는 사람 그렇게 보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며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실제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비만인이 능력이나 노력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진학·입사, 배우자를 만날 때 편견이 작용해 불이익이 온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개인 문제로 치부되는데, 그렇게 하면 해결이 안된다. 비만은 사회적 문제"라며 "많은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서 관리를 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비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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