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르포] 찜통더위속 온천2구역 주택재개발지역 길고양이 구조작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여마리 8월 착공으로 '생존위기'에 자원봉사자들 발벗고 나서

지자체·건설사·동물보호단체·병원 협력 구조인프라 시급

뉴스1

부산 동래구에 있는 주택재개발정비사업으로 지정된 온천2구역에 있는 한 주택 지붕 위에서 뛰노는 고양이들.(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제공)©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ㆍ경남=뉴스1) 조아현 기자 = 2021년 3860세대가 들어선다는 7만평 규모의 온천2구역 주택재개발사업지역.

오는 8월 착공을 앞두고 온 동네가 무너져 내린 가운데 한쪽 귀퉁이에 주택 10여채가 유일하게 남아있다.

철거 절차의 마침표 같은 이 구획에는 길고양이 20여마리가 살고있다. 길고양이들이 건축 잔해물에 깔려 죽지 않도록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캣맘의 눈물어린 호소가 동물보호단체와 관할구청에 전달돼 오는 20일까지 철거가 전면중단됐다.

13일 늦은 오후, 찜통더위 속에 방문한 부산 동래구 온천동 959-8번지에는 철거업체 직원들과 재개발주택조합 관계자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설득 끝에 길고양이들의 구조활동에는 협조하기로 합의했지만 마지막 이주자였던 캣맘에 대한 경계심과 감정골은 깊은 상태였다.

지난 9일 강제집행을 시도했는데 또다시 캣맘이 주거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캣맘은 현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답변을 재차 확인시켜준 뒤에야 철사와 밧줄로 꽁꽁 묶인 주택 대문이 열렸다.

◇아수라장 된 주택가…깨진 유리 한복판에 새끼고양이 '덜덜'

주택가 안은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일그러진 철제대문이 나뒹굴고 부서진 건축 잔해물과 깨진 유리조각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옆집 주택 뒷문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삐죽나온 철근과 부서진 시멘트 조각, 나무판자들을 조심스레 디디고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소독약을 뿌리고 먹이를 놓은 통덫을 주택 구석 구석에 설치한지 10여분이 지났을때쯤. 주택 안을 수색하던 자원봉사자들과 동물보호단체 관계자가 싱크대 아래 구석진 곳에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

곧이어 새끼고양이의 어미도 통덫에 잡혔다. 이제는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뉴스1

13일 오후 부산 동래구 재개발사업지역으로 지정된 온천2구역에서 구조된 새끼고양이.© News1 조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1

13일 오후 부산 동래구 재개발사업지역으로 지정된 온천2구역에서 구조된 새끼고양이.© News1 조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대장 고양이 '형아'가 통덫에 들어갔다. 덩치가 큰 '형아'의 몸부림에 통덫이 요동쳤다.

얼굴 왼쪽에는 살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패인 상처가 있었다. 최근에 입은 부상인 듯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급히 천으로 통덫을 감싸 고양이의 주변 시야를 가렸다. 캣맘은 옆에서 '형아'의 이름을 부르면서 진정시켰고 통덫은 점차 조용해졌다.

뉴스1

대장고양이 '형아'가 통덫 안에 불안한 듯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얼굴 왼쪽에는 살이 움푹 패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News1 조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흘 전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은 주택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재개발주택조합의 답변에 담벼락을 뛰어넘어 고양이 개체수를 확인했다.

당시 철거로 산산조각난 유리창 한복판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떨고있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권현경 자원봉사자는 "재개발 지역은 사람에게만 해당될 뿐 이곳에는 길고양이, 강아지 등 다른 생명체들도 함께 더불어 산다"며 "철거로 인해 무고한 생명체가 깔려 죽는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구조작업"이라고 말했다.

또 "구청과 건설업체가 협력해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길고양이들의 이동통로와 밥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는 지자체, 건설사, 동물단체, 캣맘 등 모두의 합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주택이 철거되고 새 아파트를 지어도 고양이들은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옮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재개발 구역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와 버려진 유기견은 이미 사회전반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보상금'와 '새집'을 얻은 주민들은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버리고 떠난다. 건설업체는 아랑곳않고 그저 포크레인으로 갈아 엎어버리기 일쑤다.

뉴스1

새끼고양이가 산산조각 난 유리창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권현경 자원봉사자 제공)©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도 이젠 '한계'…지자체·건설사·병원 협력 공공인프라 마련 시급

구조활동이 시작되던 오후 5시 무렵. 허름한 대형 승합차와 택배용 트럭, 고급 승용차까지 조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차량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재개발구역에 남겨진 길고양이를 구조한다는 소식에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트럭을 몰고 재개발 구역에 도착한 이혁재 자원봉사자는 "평소 택배기사로 일을 하는데 봉사자로 활동한 지는 한 1년 정도 됐다"며 "우리집 강아지 눈물자국을 알아보다 유기견과 동물학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금은 매주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구조하더라도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곳이 없어 봉사자들이 다친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들의 병원비를 감내하고 있었다.

'며칠만'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반신이 마비된 길고양이를 돌봤던 한 봉사자는 2년 가까이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병원비로는 거의 중형차 한 대 값이 들어갔다. 또다른 봉사자는 활동 3년만에 자가주택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었다.

신수미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팀장은 "길고양이 문제는 개인이나 오직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동물보호단체로는 버틸 수 없는 한계까지 와버렸다"며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이미 수많은 활동가들이 나가떨어졌다"라고 했다.

실제로 유기견이나 길고양이 구조활동에 대한 지자체나 기초자치단체의 예산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있다.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은 일부 예산이 편성돼 한 마리당 10~12만원씩 보조금이 나오지만 정작 구조활동에 쓰이는 물품 지원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게다가 유기동물보호소 3곳에서 빌린 통덫 20개 가운데 5~6개는 이미 고장이 난 불량품이었다.

뉴스1

자원봉사자들이 동물병원과 임시동물보호소에서 빌려온 통덫을 꺼내고 있다.© News1 조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심생태계 구성원을 외면하는 지자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무관심과 무능함도 지적됐다.

신 팀장은 "구조된 동물을 치료하기 위한 동물병원이 있어야 한는데 동래구청이나 부산시청에 연계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며 "지자체는 유기동물보호소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공수의사를 활용한 동물병원, TNR센터, 공공입양센터가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구조작업은 13일 자정까지 진행됐다. 이날 구출된 길고양이들은 모두 6마리. 캣맘이 돌보던 20여마리를 모두 구해내려면 추가인력과 관계 기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은 SNS를 통해 구조작업에 필요한 경비와 모금을 진행할 예정이다.
choah4586@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