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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저출산 난제 어떻게 풀까-상] "아기 울음소리 사라진다? 이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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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출산휴가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던 커피전문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학습지 교사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도 급여 혜택을 받게 된다. 만 8세 미만 아동의 부모는 임금 삭감 없이 하루 1시간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1세 아동의 의료비는 사실상 사라지고, 돌보미 지원을 받는 신혼부부 자녀는 지금보다 2배 많아진다. 아빠의 출산휴가도 3일에서 10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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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5일 이런 내용을 담은 '일하며 아이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출산율 목표에 방점을 찍지 않은 첫 대책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아동 성장 지원 △차별 해소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정부는 출산휴가급여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지금까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캐디, 신용카드모집인 등 특수고용직과 자영업자, 단시간근로자는 출산휴가 90일간 별다른 급여를 받지 못했다. 앞으로 이들은 월 50만원, 총 15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받는다. 새 제도의 혜택을 보게 될 여성은 5만 여명이다.

만 1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는 사실상 없어진다. 외래진료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현재보다 66% 경감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임산부에게 일괄 지급되는 국민행복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한다. 이 카드는 원래 임신·출산 진료비 결제용이었으나 앞으로는 아동의료비 결제도 가능해진다. 카드 한도액도 단태아 기준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된다.

아이돌봄 서비스도 확대된다. 현재는 3인 가구 기준으로 소득이 442만원(중위소득 120%) 이하이면 아이돌보미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553만원(중위소득 150%)까지도 지원 대상이 된다.

정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워라밸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임금 삭감없이 근로시간을 1시간 단축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 근로 단축 기간은 최대 2년이다. 필요에 따라 하루 5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으며, 이 중 1시간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해준다.

이렇게 되면 육아휴직 1년 후 복귀한 부모도 눈치 보지 않고 근로시간을 1년간 단축할 수 있게 되며, 육아휴직 이용률이 크게 떨어지는 중소기업도 큰 부담 없이 근로시간 단축을 권장할 수 있게 된다.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내에 이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남성에게 첫 3개월간 지급하는 급여를 월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인상한다.

남편이 받는 유급 출산휴가는 3일에서 10일로 늘어난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유급휴가 5일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임금을 대신 지급한다. 출산 후 90일 이내에서 휴가를 분할 사용하도록 해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모든 출생을 존중한다는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한부모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한부모가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아동의 연령을 14세에서 18세로 상향하고, 지원액도 월 13만원에서 17만원으로 높인다.

비혼 출산과 양육이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미혼모가 자녀를 기르던 중 아버지가 자녀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종전의 성(姓)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사실혼 부부도 법적 부부와 마찬가지로 난임시술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출산율, 출생아수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출산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 목표를 세우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1.05명, 출생아 수는 35만8000명으로 역대 최저였고, 올해는 상황이 더 나빠져 출산율은 1.0 아래로 떨어지고, 출생아 수는 32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 대책 수혜범위 넓혔지만…결혼·임신 안 하면 사실상 '무(無)대책'

이번 저출산 대책을 놓고 최악의 상황을 맞아 내놓은 것치고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대책에 드는 비용은 한해 9000억원 정도로, 예산으로 보면 대규모 사업은 아니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 많아 일부 사업은 내년 시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

상당수 사업 자체가 기존 대책의 보완이나 강화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수혜 범위를 넓혔지만 결혼과 임신을 하지않으면 사실상 '무(無)대책'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전 정부 10년 동안 12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저출산은 더욱 심화됐다"며 "그럼에도 올해 26조원에 이어 내년 27조원 넘게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출산을 좌우하는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당국에서는 이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며 "경제적 여건을 갖춰준다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길 기대하는 게 어려워진 시대"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무작정 재정 지원만 늘릴 게 아니라 발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출생아수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급격하게 무너져

지금처럼 국내 출산율이 급감하게 되면, 고령화 속도를 높여 노동시장이 활력을 잃으면서 경제성장 엔진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다'는 표현이 이제 진부하게 여겨질 정도로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세웠다. 이는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보이는 평균 출생아 수다. 전년 1.17명보다 0.12명(10.3%) 급감했다. 합계출산율이 1.1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5년(1.08명) 이후 12년 만이다.

합계출산율은 1971년 4.54명을 정점으로 1987년 1.53명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초반에는 1.7명 수준으로 잠시 늘었지만,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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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1.68명을 크게 밑도는 것은 물론 압도적인 꼴찌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1970년대 통계 작성이래 처음으로 35만명대로 내려앉았다.

통계청의 '2017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작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전년 40만6200명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다. 감소 폭도 2001년(-12.5%) 이후 16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한 해 출생하는 신생아 수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감했다.

1970년대만 해도 10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는 2002년에 49만명으로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40만명대로 떨어졌다. 이후 2015년 반짝 증가했다가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해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세계에서 한 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반 토막으로 줄어 '인구 절벽'에 직면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향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은 1.0명 아래로 떨어지고, 출생아 수는 32만 여명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2022년 이전에 출생아 수 30만명대로 무너지고, 20만명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출생아 수 30만명 진입은 애초 통계당국이 장래인구 추계를 통해 내다본 전망보다 18년이나 빠른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청년 실업, 주거난과 같은 경제적 이유와 양육부담 등으로 출산율이 예상보다 빨리 하락하면서 한 해 출생아 수의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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