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5 (토)

정규직 길 열렸는데…도로공사 무신경에 내쫓기는 수납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하청업체 소속 톨게이트 비정규직, 인력감축 추진에 실직

"해고 유예하고 정규직화 추진해야" 지적…공사 "별도 구제 논의할 것"

뉴스1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남고창 톨게이트'에서 수납원이 통행 차량으로부터 요금을 받고 있다.©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박동해 기자 =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인 최민영씨(가명·52·여)는 지난 1월1일 직장을 잃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게 됐다"는 게 톨게이트 운영을 새로 맡은 하청업체 사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8년 동안 톨게이트 수납원 일을 했던 민영씨에게 전북 '남고창 톨게이트'는 세번째 직장이었다. 이곳에서 3년을 일했다. 지난해 말로 하청업체가 교체되면서 민영씨는 새 업체에서 면접을 봤다. 원청(한국도로공사)에서 배정한 인원이 14명에서 12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새 업체는 기존 직원 중 12명만을 데리고 가야 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인력 감축은 사업장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연이 안타까운 것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정부 방침이 지난해 공공부문 일선현장 곳곳에서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해고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비단 민영씨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지체장애 6급인 민영씨는 비장애인들보다 걷는 게 약간 불편하지만, 앉아서 일하는 수납원 업무에서는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몫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50대의 장애인 여성인 그는 7개월째 새 일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납원의 정규직 전환 논의 중인데…도로공사 구제 노력 소홀

잘 알려진 것처럼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중점 추진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관련 지침을 발표하면서 공공부문에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잠정적인 정규직 전환 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소속에서 제외시키기 바빴다. 외부 공시에서 그들을 직원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가 국회의 지적을 받고서야 바로잡았다. 수납원 6718명과 기타 외주화된 비정규직을 합치니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규모는 613명에서 9396명으로 15배 늘었다.

이후에도 도로공사는 '수납원은 정규직 전환 예외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업종 자체가 사라질 경우는 예외를 허용한 점을 들어 톨게이트 무인화가 지속되면 수납원이라는 업종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수납원 노조가 항의하고 나섰고 지난해 9월부터는 노사 간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수납원의 정규직 전환에 유보적이던 도로공사의 태도는 지난해 11월 이강래 사장이 취임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였다. 톨게이트 전면 무인화 정책도 수납원이 있는 요금소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현재는 정규직 고용을 전제로 '직접고용안'과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안'을 두고 노사 간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전향적인 논의들이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일부 톨게이트에서는 업체 교체나 하청 계약 변경 같은 사유가 생기더라도 수납원의 해고를 유예하고 정규직화 논의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민영씨의 사연을 들은 한 동료 수납원은 "정규직 논의가 진행되면서 다른 톨게이트의 경우 업체가 바뀌었더라도 '일자리 나누기'를 하면서 결론이 날 때까지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런 조치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로공사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업체 변경, 계약 만료 등으로 사실상 해고된 수납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정규직화 추진 상황에 대한 안내 등 적극적인 구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 걸 알지를 못했어요." 민영씨는 이런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앞으로는 귀를 기울이겠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규직 전환 논의가 마무리되면 추후 이들의 고용에 대해서도 별도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1

전북 남고창 톨게이트©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납원 감축 적절한가…"화장실도 제대로 못가"

"쉬는 시간이 없으니 화장실 가는 시간도 없어요. 근무시간에 물, 음료 마시지 말라는 게 규칙처럼 됐어요."

민영씨를 포함해 2명이 떠난 자리는 남아있는 12명의 몫이 됐다. 진상 고객으로부터 날아오는 욕설과 성희롱, 자동차 매연으로 일상이 고된 톨게이트 현장은 더 바쁘게 돌아가게 됐다.

초번(오전 7시~오후 6시 근무) 3명, 중번(오후 2시~오후 9시30분) 3명, 말번(오후 9시30분~익일 오전 7시) 3명으로 돌아가던 근무가 초번 2명, 중번 2명, 말번 3명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주간에는 보통 톨게이트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주임' 1명과 톨게이트 출구 쪽에서 수납하는 '사원' 수납원 1명이 근무를 하게 됐다.

이전에 톨게이트 입구 쪽에서 발권기 관리 등의 업무를 하며 출구에서 돈을 받는 수납원이 바쁠 때 교대를 해주던 직원이 사라졌다. 이제는 주중에 업무를 보던 수납원이 급하게 화장실이라고 가게 되면 주임들이 나와서 수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도 업무가 바쁘면 주임도 짬을 내기 쉽지 않다.

도로 공사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의 톨게이트를 100% 외주화하면서 하청업체 선정 발주시 고용 인원까지 정해서 공고를 냈다. 남고창 톨게이트도 지난해 말 업체 변경을 거치며 14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도로공사는 통행료를 무인 수납하는 하이패스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유인 수납 차로의 교통량 감소를 인원 감축의 배경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직원들은 이 같은 인식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남고창 톨게이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점심을 먹을 때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어서 채 10분도 쉬는 시간이 없다"며 "밥을 먹다가도 민원인이 있거나 전화가 오면 뛰어나가 응대를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kaysa@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