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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사설] 북한, ‘베트남의 길’과 ‘한·미 훈련 재개’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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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타결 비핵화 협상 원칙 ‘흔들’

미 의회는 "한·미 훈련 재개” 경고

북, 베트남식 번영의 기회 잡아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9일 베트남에서 북한에 대해 ‘비핵화=평화·번영’이라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는 베트남 경제인들과의 만찬에서 “베트남의 기적이 김정은 위원장의 것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상상할 수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는 베트남과 똑같은 길을 당신이 따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회를 잡아라. 당신의 기적이 될 수 있다. 한민족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미·일 외교장관 기자회견에선 “비핵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보장과 평화적 관계개선을 동시에 하겠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주장한 ‘단계적 동시 행동’ 보상 원칙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세계는 수일 또는 수주 동안 미국의 (경제)제재 집행 조치를 보게 될 것”이라며 압박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신고, 검증 등 강도 같은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비난하고 핵 폐기와 관련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종전선언’만 밀어붙였다. ‘강도’라는 거친 레토릭(수사) 외교도 재구사했다. 그럼에도 폼페이오는 대화의 불씨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괄타결’ ‘톱다운(Top-down)’이라는 미국의 대북 비핵화 원칙에서 물러서는 모양새다.

미 조야에선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을 의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담이 지속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를 얘기할 것”(상원 군사위 조니 어니스트 의원), “북한 정권의 반복적인 기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하원 외교위 소속 테드 리우 민주당 의원 등)며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폼페이오 방북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싱가포르 합의문)을 놓고 북·미 간 입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와해를 노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9일 북·미 간 입장차와 관련해 “(비핵화) 샅바 싸움의 시작”이라며 “서로 원하는 바를 까놓고 의견을 개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외무성이 세 차례나 언급한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모든 문제가 북·미 간에 합의를 해나가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은둔의 북한 지도자가 국제무대로 나와 ‘철전지 원쑤’ 미국의 대통령과 악수하는 것 자체로 역사적이었다. 비록 ‘CVID’란 표현이 빠진 추상적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향후 톱다운 방식의 과감한 비핵화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그런 낙관론이 점차 우려로 바뀌고 있다. 남은 것은 북한의 선택이다. 과거에 해온 지연전술과 거친 외교 레토릭도 멈춰야 한다. 북한은 지금 ‘베트남의 길’과 ‘한·미 연합의 훈련 재개’ 사이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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