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 수상…고마운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기도
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시인이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금보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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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시 '괴물'로 국내 미투운동을 확산시킨 최영미 시인은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시인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소감을 전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 불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에 어느 정도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최 시인은 "극단적인 경우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지나치게 얼굴을 성형하거나, 한 달 월급 대부분을 옷 사는 데 쓰는 모습 등은 별로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는 그가 꿈꾸는 사회다. 미투운동이 더 진전돼 이런 세상이 오는 것도 그의 바람 중 하나다.
최 시인은 "시 '괴물'을 썼을 때는 스스로 너무 늦게 썼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이미 10년 전에 썼어야 하는 거라고 봤다"며 "너무 늦어서 이 땅 여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가 쓴 시 '괴물'은 한 원로 시인의 상습적 성추행을 폭로하고 있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으로 시작한다. 이 시는 지난해 9월 '황해문화'에서 청탁을 받고 쓴 세 편 중 하나다. 당시 시에 들어가는 원로 시인의 이름을 En으로 할지 N으로 할지 여러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처음에 썼던 En으로 결정했다.
그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칭찬 받을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이 상은 제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용기를 내서 자신의 아픔을 알린 모든 여성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강조했다.
최 시인이 보는 현재 문단은 90년대와 여전히 비슷하다. 그는 "여성 시인에 대한 성희롱과 성적화가 일상이었다"며 "한 번 있던 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괴물을 몇 십 년 동안 방치했기 때문에 '괴물 주니어'들이 넘쳐난다"고 얘기했다.
문학계 고위 인사들이나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대다수 남성인 것도 그는 꼬집었다. 최 시인은 "여성 시인들끼리는 이번에도 또 남자가 수장으로 뽑혔다는 말을 한다"며 "문화예술계의 권력을 여성들에게도 나눠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 산문집 하나를 낼 계획이다.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긴 상태다.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아서 내게 됐다.
최 시인은 "너무 오랜 시간 침묵했다. 시인은 시만 쓰면 된다고 생각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한 경우가 거의 없다"며 "여러 번 시를 놓으려고 했으나 끝끝내 놓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에게 힘이 됐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말희', '명자', '윤주', '창곤'을 비롯해 그의 동생 등은 그가 힘들 때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준 인물들이다. 그는 "일상이 많이 깨졌었는데 친구들과 동생 덕분에 살았다"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웃어 보였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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