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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文대통령, 눈물 흘리는 손흥민 위로...러시아 방문 일정 마치고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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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렬 / 용인대 교수, 김광덕 / 前 한국일보 정치부장

[앵커]
문재인 대통령이 2박 4일간의 러시아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특히 오늘 새벽 마지막 일정으로 멕시코전을 관람했죠. 눈물을 흘리는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직접 격려해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그런가 하면 어제 향년 92세로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는 오늘도 정치권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조문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최창렬 용인대 교수, 김광덕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과 짚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두 분도 어제 새벽에 축구 보셨습니까?

[인터뷰]
봤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셨어요?

[인터뷰]
어제 사실 계속 실점을 두 점이나 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골이 딱 들어가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고 이런 기세가 우리 국민들한테 전해져서 우리나라의 다른 일들도 잘 됐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온 국민이 같은 생각으로 봤을 것 같은데요. 문재인 대통령도 멕시코전을 직접 관전을 했죠. 경기 후에는 선수들을 찾아서 격려하기도 했는데요. 먼저 화면 직접 보고 오시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충분히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고요. 또 아마 이번 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골 보여줬잖아요.]

[앵커]
손흥민 선수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월드컵 원전경기를 직접 관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던데요.

[인터뷰]
글쎄요, 이번에 러시아 방문과 기간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멕시코전도 응원할 수 있었는데 아까 말씀처럼 참 아쉬워요. 두 번째 첫 골인데, 스웨덴에서 한 골도 못 넣고. 그게 너무 늦게 골이 들어가서 너무 아쉽기는 한데 아무튼 문재인 대통령으로서 만약에 가서 우리가 이겼다면 한층 더 분위기도 살아나고 또 우리나라에서 거리 응원을 했던 시민들도 상당히 기분이 좋았을 텐데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앵커]
이번 관전이 러시아 방문의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이번 방문 성과를 좀 꼽아본다면 무엇무엇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기 전에 어제 한 게 뭐냐 하면 러시아 가서 하원 의회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원 의회에서 연설을 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연설 과정에서 기립박수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한 주 내용은 뭐냐 하면 한반도는 지금 역사적 대전환의 시점에 있다라고 하는 걸 밝히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야기하면서 양국이 그동안 9개 다리라는 전략을 통해서 협력을 해 가자. 그래서 9개 다리가 뭐냐 궁금해 할 텐데 9개 다리를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크게 세 가지. 가스라든가 철도, 전력이라든가 이런 걸 연결하는, 러시아와 또 북한을 거쳐서 연결하는 이러한 사업들을 말합니다.

그런 게 있었고 그다음에 푸틴 대통령하고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 우리 눈에 띄는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남과 북 그리고 러시아 간의 협력에 대비해서 철도와 전력망, 가스관 연결의 공동연구를 추진하자, 이런 게 있었고 그다음에 한국-러시아 간에 서비스와 투자 FTA 체결 협상을 조속히 개시하자 이게 있었고요.

그다음에 양국 수교가 2020년이면 30주년이 되는데 그때 교역액이 300억 달러에 이르게 하고 인적 교류를 100만 달성을 위해 노력하자 이런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서 한국하고 러시아 간에 정상회담을 하면 좋은 결과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동안 계속 북한이 중간에 가로놓여 있어서 이행과 실천이 빨리 진행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있기 때문에 이런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이 된다면 이런 것들이 이행될 날도 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앵커]
철도와 전력망이 연결이 된다면 유라시아 철도도 개통 가능할까요?

[인터뷰]
시베리아 횡단철도인데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지금 시베리아 쪽에 전혀 철도가 없는 게 아니고 지금 현재도 런던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에 대북제재가 완화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내부에 한반도 종단 철도가 일단 개설돼야 될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기존에 철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TSR이라고 얘기하는 것.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건 TSR이 아니고 TCR이라는 것. TSR, TCR이 같은 맥락에서 된다면 획기적인 거죠. 우리나라 부산에서 한반도 거쳐서 시베리아 거치고 횡단을 해서 유럽까지 가서. 유럽 대륙은 어디나 갈 수 있고 런던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꿈의 철도가 될 수 있죠.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물류비용이 절약될 수가 있어요. 중앙아시아 쪽에 철도가 연결됐을 때 그리고 시베리아로 연결됐을 때 그 경제 효과는 굉장히 클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을 건설하는 데 여러 가지 비용이 들 겁니다. 한 4조 원 이런 얘기들이 있는데 저는 그 정도 비용은 오랜 기간 동안 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 아니겠어요, 철도를 개설하면, 부설하면. 저는 그래서 4조 원이 든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게 눈에 띄게 완전히 4조 원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그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아까 김 부장 말씀처럼 철도도 있고 전기도 있고 가스도 있고.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거든요.

특히 가스 같은 경우는 에너지 안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동안 북한 때문에 다 막혀 있던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남북관계야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것이고 미북, 북미 관계도 개선이 되는 거니까 저는 이런 부분들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제가 한마디하자면 최근에 태영호 전 공사, 탈북한 전 공사가 쓴 책이 요즘에 자서전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거기 읽어보면 본인이 북한의 외교관으로 있을 때 2000년대 중반에 런던대사관에 부임을 할 때 자기가 기차로 이동을 했다는 겁니다. 평양에서 베이징을 거쳐서 모스크바를 거쳐 런던까지. 이렇게 하는 데 약 한 달가량 걸렸는데 아마 북한 외교관 중에 그렇게 한 경우는 자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저는 평양에서 서울을 거쳐서 부산까지 이런 게 연결이 된다면 비록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굉장히 우리는 중장기적으로 여기에서 굉장한 혜택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또 다른 무역과 함께 관광 교류의 확대 이런 것뿐만 아니라 아까 말했지만 다른 여러 가지 가스라든가 전력 이런 연결까지 다 같이 된다면 유라시아의 이런 연결 속에서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나올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너무 지나치게 중국에 우리가 무역이 편중돼 있는 측면이 있어요. 지난번에 사드 문제로 우리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그런 여러 가지 철도나 전기, 가스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한러 FTA 맺고 또 교류 인원을 100만 명까지 늘리고 교역액을 300억 달러까지 늘린다면 중국을 너무 우리가 의존했던 이런 편중된 무역구조도 탈피할 수 있는 면에서 저는 러시아가 그동안 우리의 외교에서 너무 제외돼 왔던 게 이제 정상화되는 거예요.

지난 정권 때 너무 러시아 쪽과의 관계가 모든 게 끊겼던 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런 점에서 이번 한러관계의 정상화는 경제도 그렇고 안보도 그렇고 안보협력, 경제협력, 미래협력 모든 면에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북미정상회담 이후에 한반도 주변국들이 각자 역할 찾기에 굉장히 골몰하는 모습이에요. 러시아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판티노 FIFA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월드컵 공동 개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냈습니다. FIFA 회장의 반응도 굉장히 긍정적이었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그래서 문 대통령이 공동개최 이런 것을 검토하려고 하니 FIFA에서 많이 도와달라 그래서 그래서 FIFA 회장도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그리고 또 한국을 앞으로 조속히 방문해서 이런 것들을 상의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지난번에 평창올림픽에 서로 공동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팀도 만들고 여러 가지 공동 출전을 하는 게 있었는데 앞으로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런 게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월드컵 이런 것까지 공동개최라든가 이런 것의 협력으로 간다면 체육에서의 교류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옛날에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외교를 통해서 다른 모든 전면적인 교류 확대라는 것으로 했듯이 이런 것들이 다른 분야에 정치, 외교, 군사 이런 것들의 협력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제 주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어제 향년 92세로 타계했죠. 김종필 전 총리 장례식장. 이틀째 정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조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귀국을 하면 장례식장으로 갈 가능성이 있죠?

[인터뷰]
어제 이낙연 국무총리가 그런 얘기를 했죠. 아마 가실 거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해서 제가 볼 때는 가실 것 같습니다. JP야 다 아는 분인데 그야말로 풍운의 정치인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왜 풍운이라는 말을 특별히 쓰냐면 YS나 DJ, JP 3김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YS나 DJ는 젊을 때부터 민주화 쪽으로 쭉 나왔었고. 김종필 전 총리는 5.16 쿠데타의 주역이었고 또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었어요.

35세의 나이로 중앙정보부장을 했었고, 여기 약력이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리고 또 마흔다섯 나이에 최연소 국무총리도 했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나서 또 나중에 DJP 연합, 1997년도예요. 그러니까 호남과 충청의 결합이라고 얘기해서 우리가 흔히 지역 연합이다라는 얘기도 많이 합니다. 아무튼 DJP 연합을 통해서 김대중 정권을 가능하게 했던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과거 쿠데타에 참여했던 것과 달리 진보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던, 그야말로 협치의 정신, 요즘 말하고 있는 그리고 연합 정치,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영욕의 삶이 교차했다. 어느 정당도 그런 논평을 냈던데. 그리고 풍운의 정치인이었다는 말이 그래서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정말 현대 우리 한국 정치의 목격자라고 해야겠죠. 여야 지도부 모두 빈소를 찾아서 조의를 표했습니다. 먼저 영상으로 보고 오시죠.

[추미애 / 더불어민주당 대표 : 갑자기 이렇게 황급히 가셨다는 소식 들으니까 마음이 대단히 안 좋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기신 어른이시죠.]

[김성태 /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 저희 자유한국당은 큰 어른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렇게 선진국 반열로 토대를 세우신 그 업적에 다시 한 번 기대면서 저희가 환골탈태하는 큰 계기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자유한국당은 환골탈태라는 이야기도 했는데요. 나머지 다른 당들의 이야기도 저희가 그래픽으로 준비했거든요. 하나씩 띄워보겠습니다. 먼저 바른미래당에서는 3김 시대의 종식은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논평을 냈고요. 민주평화당에서는 국민의 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던 현대사 거목이 별세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의당에서는 영욕으로 점철된 삶을 사신 분이다. 자연인 김종필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이 하나같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말이 있었을까요?

[인터뷰]
일단 5개 정당의 입장이 나왔는데 각 정당에서의 공통점은 한국 정치의 거목이었고 그리고 큰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남겼다면서 애도와 함께 명복을 기원하는 이런 점에서는 똑같았는데 약간의 뉘앙스와 입장 차이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한국당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치인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고요.

그런데 민주당에서 대변인 논평이나 이런 데 보면 큰 발자취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공과 과를 다 동시에 나열을 했어요. 그런데 민주평화당 같은 경우는 국민의당 정부 출범에 기여한 점, DJP 연대를 통해서 기여한 점, 이걸 높게 평가했고요. 그런데 정의당 같은 경우는 영욕으로 점철됐다 그래서 특별히 영과 욕을 동시에 하면서 자연인 김종필이라고 하는 점을 강조하는 이런 데서 차이가 보였는데. 바른미래당은 새로운 시대를, 미래를 강조하지 않습니까? 3김 시대의 종식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 돼야 된다라고 하는데 자기 입장 속에서 조금씩 입장 차이를 보인 것 같습니다.

[앵커]
정부가 고 김종필 전 총리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국민훈장인가요?

[인터뷰]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훈장 중에서는 최고의 훈장입니다, 무궁화장이. 무궁화대훈장은 국가원수에게만 수여되는 거고. 처음에 보도가 될 때 무궁화대훈장이라고 정진석 의원이 얘기해서 그 부분은 좀 잘못 알려진 것 같고. 어쨌든 자연인 아까 얘기 나왔습니다마는, 정의당에서 자연인 김종필의 명복을 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마는 자연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 무궁화훈장이다. 따라서 정부도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에 대해서 상당히 애도를 표하는 것을 아주 공식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고요.

아까 다섯 당의 논평이 나왔는데 저도 영욕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야말로 공과 과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거든요. 김종필 전 총리는 아무튼 3김이라고 같이 불리면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산업화 시대에 민주주의가 유보되고 인권이 배제됐던 쪽의 일각을 담당했던 그런 측면도 있어요.

그러나 나중에 1997년도에 DJP 연합 아까도 말씀드렸고 또 1990년도 1월달에 3당 합당, 그다음에 민주정의당 그리고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그때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했단 말이죠. 3당 합당을 통해서 그 당시 보수 대연합 하나의 단초를 마련했던 인물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보수 정권의 탄생에 기여를 했고 또 97년도에는 진보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던. 그야말로 참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그런 면에서 볼 때 풍운의 정치인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마는 JP를 빼고 과연 우리 정치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화, 민주화를 다 같이 기여를 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양쪽에 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여러 가지 갈등 중의 하나가 아주 커다란 흐름에서 볼 때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아직은 화학적 결합이 안 되고, 이런 것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는 상당한 현대사에 시사하는 메시지가 크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이렇게 김종필 전 국무총리까지 타계하면서 3김 시대 막을 내렸다고 봐야 될 것 같은데 인물 개인이 아니라 3김 시대로 통칭되는 우리 정치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인터뷰]
3김 시대가 드디어 정치적으로 종식됐을 뿐만 아니라 소위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종식이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역사의 일종의 뒤안길로 가게 됐는데. 3김 시대는 여러 가지 거기도 마찬가지로 공과가 있습니다마는 저는 3김 시대는 일단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이 굉장히 많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단 3김이 일종의 경쟁을 하고 심지어 대립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마는 또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협력을 하면서 뭘 했냐면 일단 정치에 있어서 가장 기본인 견제와 균형이 3김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너무 한쪽으로 많이 쏠리고 권력이 쏠리거나 여러 가지 균형이 깨지는 게 없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또 하나는 3김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에 기여한 점도 있습니다마는 3김이 결국에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세 사람이 다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점, 이런 점이 있고 또 하나는 그리고 또 세 사람은 굉장한 경쟁과 대립 속에서도 결국에는 타협의 정치를 하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지 않고 결국에는 국가 이익이라는 그리고 국정운영이라는 앞에서는 마지막에 협조하는 이런 모습을 보였거든요.

바로 그런 점에서 요즘의 정치인들이 그걸 배워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부정적인 일종의 그림자의 측면을 거론한다면 세 사람이 특정 지역을 서로 분권하는 식으로 돼서 일종의 지역주의의 정치를 하지 않았나라는 문제와 그다음에 서로 계파 대립을 하면서 또 하나는 한때 제왕적 총재라는 당의 그런 역할들이 있었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주도한 측면도 있지 않냐는 비판적 시각도 일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앵커]
외신들도 김종필 전 총리 별세 소식을 크게 관심을 보이면서 보도했는데요. 먼저 그래픽으로 준비했습니다. AP통신은 두번 국무총리를 지내고 정보기관을 창설했으며 5.16 쿠데타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던 김종필 전 총리가 숨졌다라고 보도를 했고요. AFP 통신은 김종필 전 총리는 한때 한국 보수정치의 1인자였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외신의 보도 역시 김종필 전 총리의 삶을 짧게 요약을 한 거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보수 정치, 또는 3김 정치 이 부분을 역시 좀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죠.

[인터뷰]
그렇죠. 일단 JP 하면 3김 정치. 그런데 JP가 3김 정치에 같이 거론된 것은 전두환 정권의 출범 때부터였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별세한 게 1979년도 10.26이었잖아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서 암살됐는데 그리고 난 다음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3김을 전부 정치를 못 하게 연금을 했고. JP도 부정축재자로 몰아서 정치 활동을 못했어요. 그러다 1987년도 와서 그때 9번째 개헌이 돼서 대통령 직선제를 하고 민주화의 단초를 열었던 13대 대통령 선거였거든요. 그때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서 출마했었죠, JP가. 그게 아까 김 부장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는 지역주의가 아주 기승을 부릴 때였어요.

YS는 부산경남 지역, DJ는 호남 그리고 노태우 후보는 당시 민정당 대표였습니다마는 노태우 후보는 경북 TK. 그리고 김종필 총재는 충청 이랬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때 물론 71년도 7대 대통령선거, 박정희 대통령 때 얘기예요. 그때 상당히 지역적인 편차가 많이 났었어요. 개표 결과.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실 어떤 면에서 볼 때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에 본격적으로 끼어든 건 87년도 대선이거든요.

그다음에 1988년도 13대 총선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면에서 볼 때 여러 가지 3김 정치가 막을 내렸다고 얘기하는데 역시 3김 정치는 그야말로 부정, 긍정의 면이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민주 대 반민주 구조로 점철돼 왔기 때문에 과거 권위주의 시대라든지 독재시대 때. 그때 3김이 제왕적 총재가 아니었으면 사실 거대한 군부정권에 저항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그런 면에서 볼 때 그 당시는 김종필 총재는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마는 어쨌든 우리나라의 3김 정치는 앞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건 시대의 산물이었고. 역시 누구나 같은 평가입니다마는 YS, DJ, JP 누구 할 것 없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한국 정치의 거목이었다. 그리고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에 이분들을 제외하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앞으로 한국 정치는 어떻게 될까요? 일단 정치권 상황 오늘 짧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유한국당 내홍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이 친박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 이런 발언을 했고 비박계 복당파로 분류가 되죠. 박성중 의원은 친박계 의원들의 목을 친다, 이런 내용의 메모가 노출이 돼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 수습이 될까요?

[인터뷰]
저는 목을 친다, 이런 말. 우리가 지금 김종필 전 총리 얘기를 하고 있는데 김종필 총리 같은 분은 3김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정치에 낭만이 있었어요. 정치에 여백이 있었고. 이게 목을 친다는 말을 잘 안 합니다. 목을 친다고 해도 다르게 비유를 해서 얘기를 해야지. 우리나라 현재 정치인들이 상당히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런 어른들한테 배워야 돼요.

현재 자유한국당이 JP에게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이건 그 전에 나온 얘기이긴 합니다마는, 이 메모는. 현재 상황도 바로 김종필 총재한테 배워야 될 게 90년대 3당 합당은 보수 연합이었고 그때도 YS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투쟁을 하는 상태에서 보수대연합을 했던 거예요. 거기에 공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고. JP는 어쨌든 내각제를 성취하기 위해서였긴 했습니다마는 전혀 길이 달랐던 DJ와 연합했던 것 아니에요, DJP. 그래서 정권을 창출했잖아요.

그래서 김대중 정권에서도 국무총리 역임한. 두 번이나 국무총리 역임했던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왜 지금 이 보수 정당들은 그런 걸 배우지 못할까. 그야말로 보수 정객에게 이런 걸 배워야 될 것 같고요. 현재 한국당의 변화나 쇄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조금 색깔이 다른 정파하고도 연합할 수 있다는, 그런 보다 전향적인 생각을 이번에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를 계기로 보수 정당들이 배워야 돼요.

여전히 친박, 지금 어느 때인데 친박, 비박을 얘기합니까? 아직도 이번 선거의 대참패의 궤멸적 참패가 무엇인지를 잘 못 읽고 있는 거예요. 보통 때 일반적인 선거에 패배했을 때 하는 모습이에요. 그야말로 이건 보수 정당들이 JP의 별세를 계기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야당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원 구성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박지원 의원이 157석 개혁 벨트, 이런 얘기도 하고 있는데요. 원 구성 협상 어떤 방향으로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인터뷰]
원 구성 협상은 일단 계속 지연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국회의장이 공석이기 때문에 빨리 구성하는 게 맞는 건데 늦어진 이유는 한국당이 패배의 참패의 후유증을 수습 못한 상황이어서 저는 늦어도 7월 초까지는 빨리 구성 협상이 마무리돼야 된다고 보고요. 그리고 여야가 이런 건 당파적 입장을 떠나서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앵커]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 그리고 고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 이후 소식까지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최창렬 용인대 교수 그리고 김광덕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과 함께했습니다.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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