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김정은이 각각 얻은 ‘일석삼조’
한미연합훈련 중지 약속, 중국과 3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양국 정상의 속내
중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돌아간 후 그의 방중 사실을 밝히던 관례를 깨고 6월 19일 당일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한 것을 언론에 알렸다. 이는 북·중 관계가 탄탄하다는 점을 자랑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전략을 뒤흔들려는 양측의 전략으로 보인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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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한 지 1주일 만에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게 직통 전화번호를 주고 일요일(6월 17일)에 통화하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전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 주석을 만났으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불쾌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우려와 역설적인 칭찬이 다수다. 모 대학 영문과 교수는 “안보 문외한인 내가 봐도 김정은은 역린(逆鱗)을 한 것 같다. 그렇게 무시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가만있겠느냐”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인 변호사는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어 그렇겠지만, 젊은 친구가 꼬박꼬박 미국에 맞서고 있으니 어쨌든 대단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함을 비판하는 이도 적잖다. 김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올 것이라고 자랑한 일이나 한 번 만나본 후 그를 극찬한 일은 결국 무시당했다는 의미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온 것은 ‘조건부 항복’에 가까웠는데 그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 그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세론(世論)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북·중의 ‘먹튀’ 전술 vs 트럼프의 방어 전술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핑계로 어렵게 마련된 남북, 북·미 관계를 차단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빨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중단을 결정해 북한의 ‘먹튀’를 막아버렸다. ‘2018 맥스선더’ 한미연합공중훈련에서 비행 중인 F-16 전투기(위)와 UFG에 참가한 K-9 전차의 기동훈련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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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를 연구해온 모 대학 교수는 “싱가포르 회담을 연애에 비유하면 중국 품에 있던 북한이 새로운 이성(異性)을 만나러 간 자리였다. 중국은 이 회담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북한이 미국을 만나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을 터다. 그래서 전용기를 지원하고 중국도 정전협정 당사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회담 후 김 위원장이 다시 베이징에 왔으니 ‘떠났던 임’이 돌아온 양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은 ‘거봐라’, 북한은 ‘약 오르지’ 하고 미국을 놀릴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대세를 바꾸지 못하는 ‘찻잔 속 태풍’일 뿐이다. 두 사람은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만났고, 옥동자인지는 몰라도 공동성명까지 발표했으니 북한은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다. 북한이 갖고 있는 속성 가운데 하나가 ‘먹튀’다. 상대의 압박이 강력해지면 버틸 때까지 버티다 유화책을 쓰고, 이후 압박이 해소되면 갖가지 이유로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써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3차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미국 조야를 자극해 미국 스스로 북한과 관계를 끊게 하려는 속셈인 듯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 명분을 미리 차단한 바 있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기지 않은, 불씨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전쟁놀이’로 번역될 수 있는 워 게임(War Game)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워 게임은 북한만의 용어가 아니다. 내 용어이기도 하다. 백악관에 들어온 날부터 나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워 게임을 싫어했다. 싱가포르에서 워 게임을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은 나다. 북한과 협상하면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나쁘기 때문에 중단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복선을 깔아놓는 것이 외교다. 북한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압박을 피해가는 것을 공동 목표로 삼았을 수 있다. 따라서 회담에는 응하지만 적당한 명분이 있으면 먹튀하거나, 미국 조야를 화나게 해 미국 스스로 회담을 중단하게 하자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양측이 기획 가능한 것이 싱가포르 회담 후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전용기를 지원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3차 북·중 정상회담과 한미연합훈련 중지 요구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선제적으로 워 게임 중지를 밝혀 명분 하나를 없애버렸다.
중국을 옭아매는 김정은
미국에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평가받은 북한 화성-15형.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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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남북관계 개선을 노리는 문재인 정부도 바라는 바였다. 눈앞에 다가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은 10월 4일 무렵으로 예정된 대통령의 방북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깨끗이 치워준 셈이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이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통제하고자 멀리 보고 던져놓은 큰 그물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먹튀를 막고 미국의 재정적자도 줄이려고 한미연합훈련 중단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일석삼조’ 효과를 노린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이 중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미국을 조롱하고자 베이징에 간 것만은 아니다. 군사 소식통들은 지난 한 달여 동안 북한이 거의 매일 두세 차례 전투기를 띄워 훈련한 점에 주목한다.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를 논의할 때 미국은 “항공유는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며 항공유 제공을 차단하려 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두 나라는 미국의 통제를 의식해 북한에 민항기만 운영할 정도로 제한된 항공유만 제공했기에, 북한 공군기는 거의 훈련하지 못했다.
그런데 4·27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은 공군기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김 위원장 전용기인 참매-1호가 베이징은 물론이고 싱가포르까지 날아왔다. 정보 관계자들은 항공유 제공을 늘린 나라를 추적할 수밖에 없다. 외교 문제 때문에 정확히 말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자국 전용기까지 제공해준 중국인 것 같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중국으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은 데 이어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항공유 지원까지 받아낸 것은 북한이 한 번 돌팔매로 잡은 ‘두 마리의 새’가 된다.
6월 19일 김 위원장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갔는데, 이는 북한을 품어야 하는 중국에게 더 많은 것을 내놓고 대북제재를 푸는 데 앞장서라는 압박이 된다. 그런데 이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판문점과 싱가포르 회담에는 대동하지 않았던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참여케 해 정보기관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최룡해 부위원장을 심복으로 여겨 평양을 맡겨놓고 움직인다고 봤는데, 해석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김수길 군 총정치국장이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책임자가 2인자가 아니겠느냐는 쪽으로 판단을 바꾸게 됐다. 이는 김 위원장이 방첩(防諜) 기능까지 고려한 고도의 통치술을 쓰고 있는 것이 된다. 김 위원장은 주변국 정보기관을 혼란에 빠뜨리며 중국에 ‘대북제재를 풀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도록 상당한 경제지원까지 요구했으니 이는 ‘세 번째 새’가 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대중 무역제재를 강화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이 있기 전 주한미군 철수는 의제가 될 수 없다고 한 데 이어, 기자회견에서는 대북제재를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북제재 유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노선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먼저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받아낸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완화를 다음 목표로 삼을 수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도 예약해뒀으니 한국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반복해서 ‘북한 비핵화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전제조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북 경제지원은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는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데, 북한은 이를 예측한 듯 비핵화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중국도 지원 가능 세력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문재인 정부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김 위원장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중국과 미국을 경쟁케 하는 꽃놀이패를 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거꾸로 북한을 봉쇄해 고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미국의 국론도 통일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미국과 한국, 중국,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과 러시아의 국가 의지도 투사되고 있으니, 상황은 한 나라가 기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여러 개의 국가 의지가 충돌하다 보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것은 미국의 의지라는 데 이론이 적다.
김정은의 허점은 한미중을 요리한 자신감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군 유해 송환부터 합의했다. 미군 유해 송환은 미국과 북한이 긴장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는 문제다. 이어 북한 핵무기의 미국 반출이 이뤄질지 여부가 주목된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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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고자 한다. 베트남은 공산체제를 유지한 채 중국은 물론, 미국과도 외교를 맺고 있다. 따라서 남사군도 문제처럼 필요하면 바로 중국과 대립하는 모습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을 중국에도 저항하는 공산국가로 만들려 한다. 이를 위해 약속해준 것이 공산체제를 용인하는 체제 보장이고, 요구한 것이 미국 중간선거가 있기 전 북한 핵의 반출이다. 10월까지 북한 핵 반출이 이행되지 않으면 한반도는 다시 전운에 휩싸이거나 트럼프 정부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믿고 시간을 끈다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도 곤란해질 수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우리의 맹점은 북한과 김 위원장을 너무 크게 본다는 것이다. 국력으로 보면 을은커녕 병, 정에 불과한데 핵과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갑의 지위를 줘버렸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위치부터 바로 정하고 북한을 대해야 한다. 북한을 크게 보면 볼수록 한반도 문제 해결은 어려워진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덫에 걸렸다. 대통령이 될 때처럼 북한을 대단하지 않은 존재로 봐야 하는데, 한국과 중국의 영향으로 크게 보게 된 것이 북한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도 세계무대에 나와버렸다. 유해 송환에 동의함으로써 비핵화를 향한 길에 올라서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먹튀하려 한다면 그때는 중국조차 북한을 막아주기 어려울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확신이 약하고, 김 위원장은 체력(체제 유지)에 자신 있기에 선블록 크림을 바르지 않고 남국 해변으로 나왔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를 너무 크게 보고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문제라면, 당면한 과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김 위원장의 문제일 수 있다. 햇볕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펼쳐야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44호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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