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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자산운용 1000조 시대 성큼 | 수익률 목마른 뭉칫돈 굴리는 연금술사 헤지펀드 전성기…해외·대체투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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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진 탓에 증시 변동성이 커져 운용업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말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전체 운용자산(AUM)이 981조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며 1000조원 시대를 눈앞에 뒀다. 지난해 국내 전체 운용자산은 증시 호황을 타고 한때 1000조원을 돌파한 적 있지만 환매 행렬 탓에 연간 기준 1000조원에 안착한 적은 없다. 최근 두드러진 특징은 글로벌 저성장에 따른 공모펀드 부진 속 사모펀드의 급성장과 ETF(상장지수펀드) 등 패시브 약진으로 압축된다. 부동산을 비롯한 대체·해외자산 투자 활성화도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달라진 면모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투자자산의 다양화와 고급 인력 육성을 통한 질적 성장 달성이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풀 죽은 공모펀드 시장

▷운용사 경영도 ‘외화내빈’

요즘 펀드 시장 구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모 위축, 사모 쏠림’으로 압축된다. 외형이 커졌지만 다수 개인투자자의 재테크 수단인 공모펀드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사모로 쏠리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됐다.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5조7616억원이 빠져나갔고 올 들어 지난 6월 11일까지도 배당과 일반 주식형 펀드에서는 3670억원의 자금이 유출됐다.

공모펀드가 갈수록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까닭은 저조한 수익률 때문이다.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6월 11일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전체(61조6268억원)의 5년 수익률은 26.61%다. 연 환산 5% 안팎 수익률을 냈다는 의미다. 지난 1~2년 코스피 상승률에도 훨씬 못 미친다. 수수료를 제외한 실질 수익률은 이보다 더 낮다.

국내 빅5 운용사들도 체면을 구겼다. 자산 기준 빅5 운용사는 삼성자산, 미래에셋자산, KB자산, 신영자산, 한국투자신탁운용 등이다. 업계 1위 삼성자산운용은 주식형 펀드에서 지난 6월 11일 기준 5년 수익률 36.34%를 기록했다. 4위 신영자산운용은 주식형 펀드에서 43.63%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미래에셋과 KB자산운용은 20%대를 보였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19.93%로 가장 저조했다.

최근 수년간 공모펀드 수익률이 신통찮았던 것은 주식시장 쏠림 현상과 무관치 않다. 2016년과 2017년 상반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IT 반도체 쏠림 현상이 워낙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를 많이 담은 펀드만 빛났고 나머지 펀드는 외면받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는 바이오 쏠림 현상이 극심했다. 주도주 교체 과정에서 일부 ‘큰손’ 개인투자자들이 IT에서 바이오로 갈아탔고 여기에 코스닥 ETF 수급이 눈덩이처럼 달라붙으면서 수익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증시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자산운용사 경영 사정도 ‘외화내빈’이다. 펀드 시장이 개인투자자에서 기관투자자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운용사 이익은 갈수록 악화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 수는 214개로 2014년 말 86개에 비해 3년여 만에 128개(150%) 늘었다. 이 중 적자를 기록한 운용사가 76개(36%)에 달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영업수익의 대부분은 운용보수에서 나오는데 연기금을 비롯한 운용사 핵심 고객들은 보수율을 해마다 후려쳤다. 2010년 0.4%대던 운용보수율은 최근 0.2% 수준까지 떨어져 반 토막 났다”고 토로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국내 운용사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상품 구색이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금융 소비자들이 보다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운용철학과 인재 양성 시스템 등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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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는 춘추전국시대

▷삼성·미래·DS·타임·라임 5强

공모펀드에 비해 사모펀드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사모펀드 규모가 공모펀드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의 순자산 총액은 지난 4월 말 기준 3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15년 200조원을 기록한 이후 3년 만에 100조원이 더 몰렸다. 사모펀드 열풍을 주도하는 핵심 축은 사모의 한 유형인 헤지펀드 시장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8일 기준 국내 헤지펀드 설정액은 19조9103억원으로 20조원에 육박한다. 처음 도입됐던 2011년 말 설정액(2369억원)과 비교하면 7년 6개월여 만에 80배 이상 커졌다.

출범 7년 차를 맞으면서 헤지펀드 시장에서도 선두그룹이 생겨났다. 대체로 삼성헤지, 미래에셋자산, DS자산, 타임폴리오, 라임자산운용 등을 5강(强)으로 분류한다. 삼성헤지는 2011년 출범시킨 ‘삼성H클럽EquityHedge전문사모투자신탁제1호Ci클래스’가 간판 펀드다. 이 펀드는 지난 6월 8일 기준 누적 수익률 52.2%를 기록 중이다. 2012년 6월 출시돼 미래에셋에서 설정액이 가장 큰 ‘미래에셋스마트Q아비트라지전문사모투자신탁1호종류C-F’는 같은 기간 27.62%의 누적 수익률을 보였다.

신흥 강자로 자리 잡은 DS자산, 타임폴리오, 라임자산운용도 순항하고 있다. 타임폴리오의 ‘타임폴리오TheTime-A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종류C-S’는 누적 수익률 31.51%를 기록했다. ‘디에스福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종류C-S’는 50.14%, ‘라임새턴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제1호종류A’는 55.87%의 누적 수익률을 각각 기록했다. 신생 운용사 중에서는 이재완 대표가 이끄는 타이거자산운용이 맹활약 중이다. ‘타이거5Combo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1호(클래스C-S)’는 2016년 2월 설정 이후 지난 6월 8일까지 69%의 누적 수익률을 자랑한다.

국내 헤지펀드가 양적·질적 성장으로 퀀텀점프를 하려면 결국 투자 전략 다변화와 고급 인재 양성이 필수다. 해외 헤지펀드는 지수차익거래, 퀀트 기반의 시스템 트레이딩, 펀더멘털 롱쇼트와 페어트레이딩, 이벤트드리븐, 컨버터블 아비트리지 등 갖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해외에서도 탐낼 만한 인재 육성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과에 기반한 연봉 체계와 운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필수조건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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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뜨고, 액티브 지고

▷‘수익 개선 ↔ 자금 유입’ 선순환

공모 액티브 펀드 부진과 맞물려 주목받는 변화 중 하나는 패시브 펀드의 약진이다. 과거 펀드매니저에게 운용을 맡기는 액티브 펀드가 대세였다면 이제는 지수 움직임을 추종하는 방향으로 투자 전략이 변해가는 추세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패시브 펀드에 총 8150억달러(약 881조원)가 유입됐다. 같은 기간 액티브 펀드에 유입된 금액은 7분의 1 수준인 1150억달러에 그쳤다.

이 같은 경향은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TF 순자산 규모는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패시브 펀드 순자산액이 33조원을 기록하면서 액티브 펀드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공모펀드 시장에서는 패시브 펀드가 대세”라고 입을 모은다.

패시브 펀드 열풍 원인은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정성을 지향하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패시브 펀드에서 ‘수익성 개선 → 자금 유입 → 추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실제 반도체 장세가 펼쳐졌던 2016년과 2017년 패시브 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7.5%, 22.1%로 같은 기간 액티브 펀드 수익률 -3.7%, 19.4%를 압도했다.

패시브 펀드의 낮은 수수료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2017년 말 기준 국내 ETF의 연평균 총보수는 0.37%로 국내 주식형 펀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도 낮은 데다 수수료까지 비싼 액티브 펀드로부터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김성훈 한화자산운용 ETF전략팀장은 “패시브 펀드 수익률이 고공행진하면서 뭉칫돈이 계속 유입되고, 그 자금이 다시 증시로 흘러들어가 또다시 펀드 투자 종목이 상승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해외로 눈돌리는 운용업계

▷대세로 떠오른 대체투자

해외로 투자 영토를 확대하는 자산운용사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 주식투자 잔액(시가 기준)은 지난해 말보다 약 60억5000만달러 늘어난 728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해외 채권투자의 인기도 여전했다. 자산운용사의 해외 채권투자 잔액은 올 1분기 중 15억2000만달러 늘어난 538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 진출은 주로 아시아(31건)와 미국(11건)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해외 진출 건수는 지난해 말 기준 50건(현지법인 32건, 사무소 17건, 지점 1건)으로 2008년의 21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저금리·저성장 기조의 국내 투자에 한계를 느낀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눈길을 돌리면서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위윤덕 DS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시장은 상품 라인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최근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해외 주식이나 채권 등 해외를 기반으로 투자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보탰다.

전통자산이던 주식과 채권 대신 부동산과 인프라 등 대체투자에 대한 운용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체투자에 몰리는 뭉칫돈 유입은 무서울 정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부동산 펀드의 순자산은 67조7000억원으로 한 달 새 1조9000억원이 늘었다. 항공기, 예술품, 지하철, 광산 등 대체자산에 펀드 자금의 50%를 넘게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에도 5월 한 달 동안에만 4000억원이 순유입되면서 순자산이 6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말 부동산·특별자산펀드의 순자산 규모가 94조76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 반 만에 30조원 넘게 불어났다.

자산운용업계는 ‘전담마크’ 방식으로 대체투자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아시아 지역 대체투자 상품을 발굴하는 ‘아시아비즈니스팀’을 신설하고 아시아 지역 복합시설과 골프장·비즈니스 호텔 등 다양한 유형의 대체투자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신자산운용은 대신증권과 손을 잡고 부동산 금융회사로 자리매김했다. KB자산운용은 대체투자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조재민 단독 대표체제에서 조재민·이현승 각자 대표체제로 전환했다. 조 대표는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을, 이 대표는 부동산과 인프라 등 대체투자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차문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대표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주식·채권 등 전통시장과 상관관계가 낮은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代 끊긴 스타 펀드매니저

패시브 강세에 AI까지…공모시장서 짐싸는 매니저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회장,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구재상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대표.

국내 자산운용 시장을 풍미한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 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다소 과장해서 표현하면 돈을 싸들고 와서 맡기는 투자자들 대기줄이 증권사 지점 건물을 몇 바퀴씩 휘감을 정도였다.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들 산실로 주목받았던 곳은 옛 동원증권 주식부다. 박현주 회장,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대표,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대표,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사장 등이 대표적인 동원증권 주식부 출신 인물로 분류된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동원증권에 몸담았다.

최근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펀드매니저 중에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대 투자 동아리 출신이 많은 게 특징이다. 외고 출신 최고경영자(CEO)와 CIO도 상당수다. 여의도 신(新)주류로 불리는 이들은 19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1990년대 대학을 다녔고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국내 자산운용업이 급성장하던 때 여의도에 입성했다. 황성환 타임폴리오 사장,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사장, 최준철·김민국 VIP투자자문 공동 대표, 이재완 타이거자산운용 사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엄밀히 말해 스타 매니저가 종적을 감췄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황성환, 원종준 사장처럼 두각을 보이는 3040세대 인물들이 몇 있기는 해도 이들은 현재 운용 현업에서는 손을 떼고 경영에 주력하고 있고 이마저도 공모가 아닌 사모운용사들이다. 때문에 여전히 공모펀드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스타 매니저로 불리는 이들은 이채원, 허남권, 존 리 등 죄다 노장(老將)들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스타 매니저의 부재는 매니저 스스로의 역량 부족 탓이기도 하지만 운용 트렌드 변화 탓이 크다. 최근 수년간 대형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공모펀드들은 시장 수익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갈수록 액티브 펀드매니저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나마 스타 기질이 보이는 젊은 매니저들은 공모시장을 등지고 헤지펀드운용사나 투자자문사로 떠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초 기준 자산운용사에서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전체 펀드매니저 수는 656명이다. 펀드매니저 증가세는 2013년 이후 줄곧 감소세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뒤집힐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스타급 펀드매니저 대신 이들이 운용했던 액티브 펀드를 인공지능(AI)에 맡기기로 했다. 이유는 최근 3년 연평균 수익률이 4%에 그칠 만큼 저조한 성적 때문이다. 값비싼 연봉을 주고도 지수만큼의 수익조차 나지 않으니 차라리 AI 매니저를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특색 없는 공모펀드는 철저히 시장에서 외면받고 주특기가 없는 펀드매니저들도 갈수록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3호 (2018.06.20~06.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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