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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목멱칼럼]북핵협상과 민군관계, 전략적 유연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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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역사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그 중 가장 돌발적인 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미군 철수까지 운운하며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발언의 타당성은 고사하고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미 군사동맹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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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상황 전개가 2006년에 경험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군부 간 갈등으로 재현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가 전시 작전권 전환을 결정했을 때 보수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군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논란은 이념 갈등과 군부 폄하로 이어지면서 민군 관계는 상호불신과 적대로 치달았다. 정부 내에서 군사적 의제를 두고 민간인 대통령과 군인들 간에 의견 차이를 보이는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제도적 틀 내에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조정될 수 있는 원칙과 절차가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가 좋은 준거가 된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총사령관은 확전(만주 폭격)을 주장했지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휴전을 통해 전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생각에 도전했고, 공공연히 북한에서 중공군을 쓸어버릴 것이라 주장했다. 맥아더는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고 군사적 목표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해임함으로써 문민통제의 원칙을 확인했다.

반대 사례는 베트남 전쟁이다. 당시 존슨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일에 단호한 결의를 보여줘야 했지만, 미국의 직접 개입과 같은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전략적 애매함은 군사적으로 결코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정치적 압력에 밀려 장성들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정치적 현실이 군사적 필요를 압도했던 것이다. 맥매스터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의무의 방기’(1996)에서 “군 지휘부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지지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자신들의 의무를 회피한 행동”이라고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자는 정치적 현실을 무시한 사례라고 한다면, 후자는 군사적 필요를 외면한 결과였다. 정치와 군사가 충돌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원칙은 정치와 군사의 분리다. 수많은 군인은 ‘전쟁의 목표는 정치인이 정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할지는 전문가인 군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자신들을 군사 문제의 전문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생각은 결을 달리한다. 맥아더 해임 사건을 계기로 집필된 ‘군인과 국가’(1957)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룬 최초의 체계적 연구다. 저자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군인의 이상적 태도는 군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조언하되 자신의 판단과 반대되는 결정이라 하더라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고려는 정치적 고려에 양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정치적 결정이 일방적으로 군사적 판단을 구속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전략적 목표와 군사적 필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휴 스트라챤 교수의 ‘전쟁의 방향: 역사적 관점에서 본 현대전략’(2014)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는 정책(정치)과 전략(군사)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전략과 정책목표는 그 자체로 고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면서 조금씩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성공적인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해석이 전쟁을 정치에 도구로 종속시키고 있다면(클라우제비츠), 저자는 ‘열려 있는 과정’으로서 전략과 정책 상호작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상호작용의 핵심은 유연함이다. 서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다면 상호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의 핵심도 바로 가변성에 있었다. 전술적 완고함만큼 경직된 전략 역시 군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함’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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