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경제 여건 하반기부터 악화될 가능성 커 소득주도성장 집착 말고 실용적 정책 구사해야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
당장 대외 경제환경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2%로 끌어올렸다. 올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유럽도 통화 긴축 모드로 돌아섰다. 선진국들이 돈줄 조이자 약한 고리인 신흥국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보복관세로 난타전을 벌이는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외풍에 약한 한국 경제로선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수출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두 자릿수로 올랐던 수출 증가율은 올 4~5월 중 5.5%로 뚝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수출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이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출 경기야 언젠간 또 좋아지겠지만, 해외시장에 내다 팔 제품 자체가 사라진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중국의 공격 앞에서 아직 끄떡없는 건 반도체 정도다. 조선업이 침몰한 데 이어 자동차산업이 후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가 따라잡혔고 휴대전화는 박빙의 우위다. 중국은 국가와 기업이 똘똘 뭉친 ‘산업 굴기’로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원자력 등에 무한 투자를 하고 있다. 2020년대 초반까지 모든 제조업에서 한국을 추월한다는 목표다.
우리 정부는 천하태평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별 경쟁력 점검 및 대응책 마련은 뒷전이고, 탈원전에 올인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산업은 구조적 대전환기에 처한 게 분명하다. 중국에 내줄 것은 내주되, 지킬 것을 선별해 확고히 지키며 새 먹거리를 만드는 혁신에 매진할 때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 노조까지 손을 굳게 잡아야겠지만 현실은 불신과 반목의 연속이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재벌그룹은 3~4세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다. 재계 리더십의 불안과 경험 부족은 의사결정의 지연과 모험 회피로 이어지고 있다. 재벌 계열사들이 쌓아놓은 현금은 통 큰 투자에 쓰이지 못하고, 자사주 소각과 배당 등 외국인 투자자 환심 사기에 대거 투입되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내수도 싸늘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대출 및 재건축 규제, 보유세 실질 인상 등으로 건설 경기가 지방부터 급랭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 최저임금이 또 10%대로 인상되고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 시행되면 더 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한계 상황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저소득층의 일자리 및 소득을 압박할 것이다.
요즘 중소기업인들 사이에 최대 화두는 ‘베트남’이다. 신규 투자는 물론 기존 공장의 이전을 위해 베트남을 찾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젊은이들은 알뜰살뜰 모은 돈을 해외여행에 과감히 쓴다. 투자와 소비에 국경이 없는 ‘열린 경제’에선 소득주도성장이 먹혀들기 힘든 이유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강변한다. ‘그걸 꼭 통계로 확인해야 알겠냐’고 묻고 싶다. 청와대 구중궁궐에서 벗어나 기업과 자영업 현장을 찾아가면 바로 알 일이다.
남북한 경제협력이 돌파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제재의 해제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의 개발 이익이 미국이나 중국에 더 크게 쏠릴 가능성도 있다.
경제 여건이 좋았던 지난 1년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에 성과 없이 허송세월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혁신 성장은 결국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 노력에서 나온다. 이제라도 대내외 경제환경의 악화를 직시하고 규제개혁과 균형 잡힌 실용적 정책, 기업 및 시장과 소통하는 경제정책을 구사하길 바란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