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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취재일기] 가정 돌봄 가족, 그들의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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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종훈 복지팀 기자


“말할 사람이 없으니 심심하지. 이렇게라도 와주니 좋죠.”

뇌졸중·담관암을 앓는 정명숙(70·서울 마포구)씨는 12일 기자와 대화가 끝나자 못내 아쉬워했다. 옆에 있던 남편 김영각(71)씨도 “고맙다”고 했다. 정씨는 부축을 받아서 화장실에 겨우 간다. 발병한 지 3년 동안 노부부는 집 밖 나들이를 한 적이 없다. 김씨는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주위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더라”고 했다.

치매·중풍·교통사고 마비·희귀난치병…. 식물인간에 가깝거나 진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도 적지 않다. 가정 돌봄 환자는 건강보험·의료·사회 통계 어디에도 없다. 가정에서 떠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끌어모았더니 100만명이 넘었다.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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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53세 여성이 24시간 누워 지내는 희귀병 아들(26)을 17년째 돌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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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복지·의료·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취재팀은 한 달에 걸쳐 20명을 인터뷰했다. 한 명도 방문을 거부하지 않았다. 상당수는 사진 촬영을 기꺼이 허락했다.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라고 의문을 품고 갔다. 집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대화를 시작하면 1~2시간은 기본이었다. 적게는 몇 년, 길게는 20여년 가슴에 쌓인 한을 쏟아냈다. 인간관계,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고립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4년째 근이영양증 남편을 챙기는 서모(48)씨는 90분 넘게 속에 있던 이야기를 했다. 마무리될 즈음에 한마디를 꺼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해요. 평소 이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보니….” 가족들은 병원 환자만 챙기는 정부에 대한 야속함, 얄팍한 복지 제도의 허상 등을 세상이 좀 알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아픔을 나눌 이가 없으니 스트레스가 하늘을 찔렀고 못다 한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나마 이들의 말벗이자 손발이 되는 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정간호사 같은 전문 돌봄 인력이다. 뒤센근이영양증 환자의 어머니(53)는 “이 언니(활동지원사를 지칭)가 있으니 앉아서 졸기라도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가 환자 66명을 챙기는 최비아(66) 가정간호사는 “집에 가서 의료 행위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이해해주고 이야기도 털어놓는 한 식구”라고 표현했다.

가정 돌봄 가족들은 휴식, 간병 인력 지원을 절실하게 바란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만 세상에 잘 알려주세요.” 루게릭병 남편을 18년간 돌봐온 최금옥(48)씨의 호소다. 관심이 있어야 제도 개선도 뒤따르는 법이다.

정종훈 복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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