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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자유한국당 버려야 보수가 산다]지도부 입맛대로 '전략 공천'···당권 견제 장치 마련 법제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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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고무줄 당헌·당규

불리한 선거판세서도 계파간 권력 이전투구에 자멸

진보세력과 정책경쟁도 뒷전···풀뿌리 공천은 실종

獨처럼 공천 과정 녹취록 제출 의무화 등 보완 필요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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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을 발굴하는 풀뿌리 공천에 목표를 뒀습니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5월 6·13 지방선거 공천을 완료한 뒤 국민보고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천 심사 내내 ‘사천(私薦)’ 논란이 일었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으름장을 놓는 예비 후보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한국당 역대 선거 공천에는 ‘학살’ ‘보복’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따라붙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속을 들춰보면 늘 ‘계파 갈등’이라는 권세 다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보 세력과의 정책 경쟁은커녕 밥상을 둘러싼 집안싸움 이미지만 드러나며 ‘안일·보신’의 낙인을 자초한 것이다. 공천권이 당내 승리 세력의 전유물이요 완장으로 전락하면서 국민을 위한 ‘진짜 풀뿌리 인재 추천’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지도부 입맛에 따라 당헌·당규를 바꾸고 공천제도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내부 총질’로 대표되는 권력 다툼은 보수 붕괴의 대표 원인으로 꼽힌다. 보수 적자를 자부하는 한국당도 선거 때마다 권력 암투가 뒤엉킨 공천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친이(친이명박)계가 친박(친박근혜)계를 공천에서 대거 배제하며 ‘공천학살’ 논란이 불거졌고 4년 뒤인 19대 총선 공천에서는 ‘복수혈전’이 펼쳐졌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권을 장악한 새누리당은 ‘현역 컷오프(공천배제) 25%’ 원칙을 내세워 친이계를 탈락시켰다. ‘옥쇄파동’으로 유명한 20대 총선 공천도 친박계가 비박계를 공천에서 배제하며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번 6·13 지방선거 역시 홍준표 대표가 한국당 텃밭인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에 확정되며 ‘셀프 꽃길’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창원시장을 비롯한 기초단체장 공천에서 ‘홍 대표 사천’ 반발을 초래했다.

계파 간 공천 잡음은 정책·노선 경쟁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말 그대로 ‘편 가르기’라는 점에서 정치 불신과 정당 정치의 퇴보를 가져왔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어느 정당이나 선거철이면 공천 잡음이 있지만 한국당의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판세가 불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상황에서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모습을 재차 노출하며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단 한국당뿐 아니라 정당 공천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투명성 확보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가 공천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선거법·정당법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자의적인 당헌·당규 해석 및 사천에 대한 불이익(공천 무효, 정당보조금 삭감 등)을 명시하고 선거 전 공천 완료 시점을 못 박는 등 절차·내용상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게 대표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지금은 당 대표가 사천을 하고 선거 코앞에서야 후보를 확정해도 법적으로 잘못을 추궁할 수 없다”며 “최소한의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각 당이 이에 맞춰 당헌·당규를 정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당은 올 2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위원회를 열어 전략공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의결했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선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지역을 ‘우선 추천(전략공천) 지역 선정 요건’에 추가한 것이다. 이 같은 방침에 당 안팎에서는 ‘우선 추천이 중앙당 및 시도당 지도부의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반영된 사천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고무줄 당헌·당규를 막을 견제장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공천 과정을 녹취해 그 기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다. 김 교수는 “독일은 후보 등록 시 공천 과정 녹취록을 중앙선관위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며 “녹취록을 내지 않으면 후보 접수를 거부해버리기 때문에 투명성을 강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천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밀실 합의’ ‘룰 무시’를 뿌리부터 차단하는 셈이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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