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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기고] 궁중족발 건물주가 월세를 올릴 수 없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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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급진적이고 논쟁적인 제안들로 가득합니다. 에릭 포스너와 글렌 웨일이 함께 쓴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s)'은 부동산 독점 가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부동산 거래의 실시간 경매제를 제안합니다. 마치 온라인 광고 시장처럼 만들자는 것입니다. 토지 및 주택 소유자는 부동산에 대한 판매 가격을 공개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공개된 판매 가격보다 더 높은 구매 가격을 제시하면 부동산 소유권은 이전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동산은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이들의 소유가 됩니다. 완전경쟁시장에서 나타나는 최적의 효율성이 달성됩니다.

또한 부동산 소유자들은 자신이 공개한 판매 가격에 비례해서 세금을 내야 합니다. 높은 가격을 제시할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동산 소유자들은 자신이 부여하는 부동산 가치를 있는 그대로 공개할 인센티브를 갖고, 독점력에 의한 가격 상승은 줄어듭니다.

최근 서촌에 있는 궁중족발 건물주는 월세를 3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고, 이로 인한 분쟁 때문에 폭력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만약 이 건물이 실시간 경매시장에 나와 있다면, 몇만 원 인상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301만원 정도 월세를 받고서도 건물을 소유하고 싶은 이가 나타나서 구매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현 건물주는 처음부터 이 건물을 사려고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물 가격에 비례한 높은 세금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낮은 월세를 받고서도 임대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이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급진적 시장주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금 수익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부동산의 가치를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저자들은 헨리 조지의 토지공유제와 지대세, 그리고 대표적인 조지스트 경제학자였고 경매제도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받은 윌리엄 비크리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부동산 문제 외에도 이민자들에 대한 스폰서십, 1인 1표제의 선거 제도, 디지털 경제의 정보 사용 문제 등에 대해서 급진적인 형태의 시장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시장과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독점 정책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하고, 기관투자가들에 대해 경쟁 기업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우파의 시장 근본주의는 상상력을 잃고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평등과 불공정함을 교정하려는 좌파는 지나치게 정부 관료주의에 의존하는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장 급진주의를 통해 비효율성과 불평등 모두를 바로잡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파와 좌파 모두가 좀처럼 동의하지 못할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독점성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파는 문제 의식의 전제부터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지닌 좌파는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해결책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 집단과 기술 관료들 다수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해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버드대학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 같은 이라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반론을 펼 것입니다. 아마도 평범한 학자들이 급진적 시장을 주장했다면 비웃음을 샀거나 무시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자인 에릭 포스너는 예일대 법대 교수이고, 연구의 인용 빈도수가 가장 높은 법학자 중 한 명입니다. 노벨경제학상 후보로도 종종 회자됩니다. 글렌 웨일은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1년 내에 마친 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당한 깊이와 폭을 지닌 연구 업적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대학 교수로 있다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로 직장을 옮겨 일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제안이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논쟁을 일으키고, 어느 정도까지 실현 가능성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김재수 미국 인디애나-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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