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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공간의 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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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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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 갤러리가 탄생했다. 장 뤽 고다르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현 시대 가장 핫한 포토그래퍼들 중 한 명인 제이알(JR)의 협업이 이뤄낸 결과다.

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영화의 서두에서 보여지듯, 둘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어준 것은 예술성에 있다. 제이알은 바르다의 영화를 봤었고, 바르다는 제이알의 외벽에 붙여진 흑백 눈동자 사진 작품을 봤었다. 그리고 바르다는 제이알을 친구인 장 뤽 고다르와 닮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88세 바르다와 33세 제이알의 세대를 초월한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영화를 살펴보기에 앞서, 각 인물들에 대해 간단히 알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아 소개해본다. 아녜스 바르다는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사진 작가이다. 또한 이번 작품처럼 자신의 작품에도 출연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녀는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연출해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 받았으며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와 같이 다양한 여성상을 그려, 여성 영화인들의 롤모델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고다르와 함께 진보적인 주제로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며, 여러 예술 분야의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연출 기법을 구사해왔다.

프랑스 태생의 포토그래퍼 제이알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멀티미디어(컨버저스) 아티스트 등 다양한 별칭을 지닌 인물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인물들’의 주요 작업 방식인 대형 인물 사진을 찍어, 대규모 콜라주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한 그는 '비계를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의 경우, 2017년 국내에서 진행됐던 그래피티 전시 '위대한 낙서展'을 통해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 경험이 있다. 여느 그래피티 작품들도 그러하지만, 특히 제이알의 작품이 지닌 세계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혁신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멀리에서 봐도 훌륭한 그의 작품은, 근접에서 '관찰'해도 우수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이렇게 두 명의 '혁신적인 예술가'가 만나 완성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예술적이고도 인간적인 로드 무비다. 두 예술가는 프랑스 전역을 누비며 흑백의 대형 인물 사진을 인쇄해, 그들의 집이나 직장 등에 붙인다. 그로 인해, 단순한 공간에 그칠 수 있었던 곳은 '장소'가 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무 곳에 작품 활동을 했을 리가 없다. 눈치 빠른 이들은 잘 알겠지만, 이들의 발길이 닿은 곳들은 두 감독의 추억이 깃들어있다. 바르다가 촬영지로, 제이알이 작업 활동을 진행했던 곳들이다. 동시에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장소'이기도 하다. 허물어져가는 광부촌, 낡디 낡아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부락 등이 그렇다. 낡고 사라져가는, 그래서 인적마저 드물어가는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되살리겠다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두 감독의 인본주의 정신을 밑바탕에 둔다. 남성의 그늘 아래에서 떳떳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들의 아내 사진을 붙임으로써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고, 카페 외벽에 직원 사진을 붙여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킨 바르다. 이렇듯 영화는, 장소뿐 아니라, 사회적 약층에 속하는 여성의 가치를 신장시키는 역할도 해낸다. 여기에는 바르다 자신의 과거도 깃들어 있다. 남편 자크 데미의 명성에 가려져 자신의 작품이 (상대적으로)빛을 발휘하지 못했던 그녀의 자위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따듯하다.

이 '프로젝트'는, 두 예술가만의 협업이 아니다. 프랑스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됐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결과물에서 바르다의 '내공'이 드러난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우연은 위대한 작품의 조력자'라며, 우연이 선사하는 위력을 표출한다. 공장 촬영 당시 만난, 오늘 조기 퇴직을 앞둔 직원과의 만남 같은 상황 말이다.

영화에는 우연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과는 반대로, 계획이 허망으로 돌변하는 상황 또한 보여진다. 바르다와 고다르의 약속이 그것이다. 아마, 고다르의 등장 예고를 들은 시네필들은 기대했을 것이다. 바르다는 5년 만에 고다르와의 재회를 희망하고, 그와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고다르는 '역시나' 등장하지 않는다. 바르다를 향한 암호를 남겼을 뿐이다. '자크', 그리고 '해변'. 자크는 앞서 언급했듯, 바르다의 남편을 뜻한다. 해변은, 자크의 사망 후 바르다의 작품들 중 가장 총애 받았던 작품이다. 고다르는 이 두 암호를 통해, 남편의 그늘에 갇혀 살았던 바르다의 가치를 내비치고 그녀를 위로한다(물론, 얼굴을 내비쳤다면 최고의 기쁨이자 위로였겠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바르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의미화한 것과 동시에, 바르다 자신을 위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바르다의 굵직한 행보가 배어있는 동시에, 그녀의 인간미가 스며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한없이 사랑스럽다. 제이알과의 농담과 색을 사랑하는 그녀만의 개성이 반영된 옷, 머리카락 색들이 선사하는 즐거움도 엿볼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추억이 밴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들보다 가장 사랑했고 사랑 중이며 사랑할 대상인 자신 스스로가 있다.

이토록 감각적인 다큐멘터리영화는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존재 자체가 예술인 이 작품, 신선하고 예술적인 영화를 기다려왔다면, 놓치지 마시길.

[최다함(최따미) 광고대행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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