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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압도당했던 101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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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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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영화관 내 분위기를 온전히 기억한다. 숨죽였던 101분의 시간. 물론, 이 감정은 나만의 것은 아닐테다. 영화관을 꽉 채울 만큼의 인기 작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찾은 관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인물의 기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 듯했다.

영화는 류이치가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쓰다듬고 연주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이 조율해준, 자연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장 자연적인 피아노'를 연주한 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쓰나미에도 살아남은 피아노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피아노는 사람의 손과 기계를 거쳐 인공적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내버려 두면 피아노는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변해가는 소리를 애써 다시 인공적으로 조율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이제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쓰나미 피아노에서는 인간적인 기준에서 자연스러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여기에서부터 류이치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렇다. 그는 자연과 환경 등에 관심이 높은 예술가다. 이어 보여지는 장면들에서는 반핵활동가로 목소리를 내는 그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다.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은 여기에서 류이치의 남다른 면을 발견한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직접 발을 디디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 이 굳건하고 강인한 모습만큼, 류이치의 작품 세계관도 남다를 것임을 간파한 것이리라.

사실, 반핵활동가로서의 면모가 아닐지라도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인물은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작업으로 골든 글로브상과 그레미 어워드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석권한 그는 작곡뿐 아니라, 배우 활동도 겸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하지만 그는 2014년 인후암 판정을 받고, 당분간 치료에 전염하고자 음악 활동들을 중단한다. 암 판정을 받는 그 해, 새 앨범 작업을 준비하고자 했었지만 그것마저 접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평소 존경해오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음악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재개한 그는, 미뤄뒀던 앨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이전에 생각해오던 것들을 모조리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고자 다짐한다.

영화는 안간힘을 써도 하루 최대 8시간 정도밖에 곡 작업을 하지 못하는 류이치의 열정과 동시에, 그에 영감을 불어넣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보여준다. 류이치가 영감을 얻는 주요 요소들로는, 앞서 알 수 있었던 자연(환경)과 영화,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리고 바흐가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에서도 살아남은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피아노의 음색과 더불어, 그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1992년 무렵이라고 고백한다. 환경이 문제화된 것은 스스로 나빠진 게 아니라, 인간의 활동과 연관되어있다고 말하는 그는 '인간의 활동에 따라 개선될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류이치 역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빗소리, 폐허 소리, 인파 소리 등 우리는 온갖 소리들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연의 소리들을 수집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실제로, 음악 작업에 사물의 소리들을 따낸 것들을 삽입함으로써 남다른 결과물을 선보이기도 한다.

한편 그는 영화 속에는 종종 바흐의 곡들을 연주한다. 바흐는 '코랄 전주곡'이라는 찬송가를 다수 작곡했는데, 여기에는 당대 상황인 전염병, 굶주림, 억압 등이 배어있다고 말한다.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영감들이 우울한 결과물로 이어졌고 거기에서 자신은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고백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언급하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의 다양한 소리들을 영화에 표현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에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 속엔 물소리도 있고 바람 소리, 발자국 소리도 들어있다. 다양한 소리가 풍요롭게 표현돼 있다.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걸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또한, 영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자유롭지는 않지만, 다른 관점에서 일하라는 주문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그다. 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면서 말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단순히 인물의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류이치가 음악적 영감을 얻는 요소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주는 동시에, 그가 재능을 표출했던 작품들을 감상하게 만드는 미니 콘서트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자연과 환경 문제 인식에서부터, 어떠한 소리들도 허투루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인문학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암 판정을 받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내는 면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생에 대한 자극을 선사한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한 대사인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라는 말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지금도 매일같이 짧은 시간이라도 피아노 연주를 해나가고 있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신이 깃들어있는 엔딩 신은 애잔한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영화의 서두에는, 개인적으로 류이치의 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전장의 크리스마스’ 사운드 트랙 중 하나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연주 장면이 보여지는데, 그때부터 나는 울컥했다. 그 눈물은, 단순히 멜로디의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음악에 대한 진중함과 열정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내비치는 류이치의 천진한 웃음은 그의 거장이라는 묵직한 수식어와는 다른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더 빠져들게 됐다.

[최다함(최따미) 광고대행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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