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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World & Now]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챙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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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부동산 재벌 출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심은 표와 돈뿐이다.

무지막지한 이민정책을 밀어붙였을 때는 표 때문이었고, 캐나다 유럽 등 우방국들에 무리한 통상 압박을 가했을 때는 돈 때문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장한 이유도 표 때문이었고,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자라고 살아온 배경이 있으니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점점 더 노골적이다.

6·12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은 반세기 만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였다. 핵전쟁 위협에서 벗어날 희망이었고, 평화를 향한 염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표를 얻고 돈을 챙길 기회로만 보였던 것 같다.

6·12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 악수를 했고 공동선언문에 서명을 했지만, 냉정하게 뜯어보면 결과는 '맹탕'이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빅딜이 성사됐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합의문에서 빠졌다.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서보다 나아진 게 없다. 오토 웜비어 사망으로 미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던 북한 인권 문제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북한에 주고, 한국전 미군 유해 송환이라는 대가를 챙긴 것이 전부이자 유일한 성과다.

애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노렸던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직전에 그럴듯한 정치적 이벤트를 만들어 표를 챙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올가을에 북한의 핵탄두를 미국 테네시 오크리지 핵연구단지로 가져오는 것을 기대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북한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 떠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발끈하며 김계관 최선희 등 고위층 담화를 통해 맹비난을 퍼붓자 얼른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핵탄두 반출 대신에 생각해 낸 것이 미군 유해 송환이다. 핵탄두 반출과 미군 유해 송환은 비핵화라는 대명제를 두고 결코 대체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는 안중에 없었다. 오직 11월 중간선거 직전에 내놓을 이벤트가 중요했던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한 대가로 내놓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었다. 이는 지금껏 한미 연합훈련을 공격훈련이 아니라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해온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 동맹에 대한 방어 의지를 희석시켜 한국은 물론 일본 등 여타 우방국들을 불안에 빠뜨리는 심각한 조치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왜 중단하느냐'는 질문 앞에 내던진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는 "돈이 많이 들어서"였다. 그 대답에 허탈감을 느낀 건 한국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미국인의 심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letsw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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