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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제주선 독박육아 끝! 동네이모 10명이나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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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명품 행정] <8> 제주형 ‘수눌음’ 육아돌봄

시설 중심 공적 돌봄 시스템 한계

제주의 품앗이 ‘수눌음’ 정신 접목

주민 기획ㆍ운영, 지자체 예산 지원

간식ㆍ저녁 제공하고 다양한 프로그램

올해 공동육아팀 55개ㆍ나눔터 30곳으로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5월 15일 제주시 삼화2차부영아파트 관리동 1층에 자리한 수눌음육아나눔터 1호점에서 진행된 ‘수눌음 마을밥상’을 찾은 아이들이 무료로 제공된 떡꼬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안내판에는 ‘수늘음’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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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5일 오후 3시쯤 제주 제주시 삼화2차부영아파트 관리동 1층에 자리한 수눌음육아나눔터 1호점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4,5명의 엄마들이 모여 프라이팬에 소시지와 떡꼬치를 구운 후 매콤한 양념을 발라 넓은 그릇에 수북이 쌓아놓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엄마들에게 “이모, 이모”하며 말을 걸고 있었다. 오후 3시30분쯤 되자 하교하는 아이들이 이곳 외부에 마련된 벤치로 몰려들었고, 스스럼없이 떡꼬치를 손에 받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수눌음육아나눔터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매월(4~11월) 첫째주와 셋째주 화요일마다 반복된다. ‘수눌음 마을밥상’이라는 이 프로그램은 첫째주 화요일 저녁에는 저녁밥을, 셋째주는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에게 간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행사 주체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열 가족이 모여 만든 부모들의 모임 ‘한지붕열가족공동육아팀’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제주에서는 ‘제주형 수눌음육아 돌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시설 중심의 기존 공적 돌봄시스템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제주 특유의 전통인 ‘수눌음’ 정신을 접목해 부모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돌봄시스템이 새롭게 가동된 것이다. 수눌음은 마을에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돌아가면 돕는 제주의 미풍양속이다. 다른 지역의 품앗이, 두레와 비슷하지만 마을 단위로 이뤄지는 공동체적 성격이 더 강한 제주만의 삶의 한 방식이다.

수눌음육아 돌봄 정책은 크게 나눔터 조성, 돌봄공동체, 지원체계 등 세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수눌음육아나눔터 조성사업은 도내 사회복지관이나 마을회관, 아파트 등 유휴 공간을 나눔터로 조성해 공동육아팀들을 위한 장소로 제공된다. 지난 2년간 도내 20곳이 조성됐고, 올해는 10곳이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1곳당 리모델링 비용 5,000만원과 운영비로 연간 600만원이 지원된다.

돌봄공동체는 5가구 이상이 참여하는 부모들의 모임으로, 수눌음육아 돌봄 정책의 핵심이다. 부모들이 스스로 공동육아팀을 만들어 공동육아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나눔터마다 5~15개 공동육아팀이 활동하고 있고, 나눔터 운영도 이들이 모여 모든 사항들을 직접 결정한다. 지난해 37개 공동육아팀에 262가족이 참여했고, 올해도 55개팀이 운영될 예정이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댄스교실, 오감미술활동, 도예, 방학돌봄, 가족건강요리 만들기, 놀이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팀별로 700만원 이내 운영비가 지원된다.

수눌음육아 돌봄 정책에서 행정의 역할은 최소화했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돌봄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도움과 육아프로그램개발에 필요한 정보 제공, 교육 등을 지원할 뿐 공동육아팀 운영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문선영 한지붕열가족공동육아팀 대표는 “공동돌봄 이후 아이들이 다른 집 엄마들을 이모라 부른다. 한꺼번에 열명의 이모가 생긴 셈”이라며 “아이들끼리도 집을 오가면서 형제처럼 지내고 있어 삭막했던 아파트가 이웃들이 서로 알고 지냈던 어릴 적 마을동네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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