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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몰카 공포'의 풍경…요즘 여성들 지갑에 송곳 하나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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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몰카 찌르개'를 구입한 여성 최모씨 자신의 지갑에 찌르개를 넣은 모습. [사진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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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26?여)씨는 지난 주말 집 근처의 한 생활용품점에서 ‘휴대용 송곳’(두께 3㎜·길이 15㎝)을 샀다. 그는 항상 자신의 지갑에 이 송곳을 넣고 다닌다. 공중화장실의 구멍이나 틈새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있을지 몰라 직접 찔러보기 위해서다. 최씨는 “공중 여자 화장실에 가보면 문과 벽에 구멍이 많다. 화장실 몰카 등이 음란사이트에 많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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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몰카 찌르개' 구매 인증샷 [사진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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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드라이버 등 일명 ‘몰카 찌르개’를 파우치나 지갑에 항상 챙겨 다니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몰카 찌르개를 구매했다는 ‘인증샷’도 올라오고 있다.

여성들이 ‘몰카 포비아’에 빠진 이유는 최근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려서다. 경찰청 성폭력대책과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붙잡힌 몰카 피의자는 총 1288명(이달 13일 기준)이었다. 이중 남성 피의자가 1231명이었다. 지난달에는 명지대 학생회관 여자 화장실에서 몰카 촬영을 하던 이모(25)씨가 붙잡혔고, 지난 3월에는 광주의 한 대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소형 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달에는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 고려대 등 대학가 남자 화장실 영상이 유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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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고리가 달린 '몰카 찌르개'. [사진 트위터 캡처]


여성들이 특히 찌르개를 사는 이유는 휴대하기 간편해서다. 작은 송곳·드라이버는 작고 가벼워 파우치나 지갑에 넣을 수 있다. 물리적인 힘을 가해 카메라를 부수기 때문에 몰카를 없애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 전 몰카 찌르개(길이 5.5㎝)를 샀다는 장지윤(35?여)씨는 “열쇠고리가 달린 드라이버라 갖고 다니기 좋다. 공중 화장실에 가면 보이는 틈새마다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도 ‘이쑤시개랑 비슷한 굵기라 파우치에도 쏙 들어가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등의 찌르개 사용 후기가 올라와 있다. 지난 2월,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송곳이 포함된 ‘몰카 금지 응급 키트’를 판매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목표금액의 600%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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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찌르개'로 쓸 송곳과 실리콘을 구매했다는 인증샷. [사진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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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개 말고도 매니큐어나 일명 ‘빠데’라 불리는 가정용 충진재를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화장실 구멍에 바르기 위해서다. 실리콘이나 휴지를 이용해 구멍을 막는 방법도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다.

이런 방식들에 비해 ‘몰카 탐지기’를 사용한다는 여성이나 후기는 찾기 어려웠다. 가격이 5만~50만원으로 찌르개에 비해 고가이고 부피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성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모(28·여)씨는 “고가 탐지기라도 100% 몰카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선뜻 구매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되는 탐지기는 적외선에 반사되는 빛으로 몰카를 탐지하는 방식인데 카메라 렌즈가 작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또 폐쇄회로TV(CCTV)처럼 전파를 통해 영상이 외부로 전송되는 게 아니면 탐지가 어렵기도 하다.

몰카 탐지 애플리케이션(앱)도 많지만 이마저도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다운로드 100만 건이 넘은 한 앱에는 성능 문제를 지적하는 후기가 다수 올라와 있었다. 김모(31·여)씨는 “막상 범인이 잡혀도 ‘물 처벌’ 받는 경우가 많더라. 찌르개는 몰카 피해자가 되는 걸 막는 최소한의 대책”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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