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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권정생은 사랑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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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전기 출간

첫 지면 발표작 ‘여선생’ 발굴 등

11주기 앞두고 삶과 문학 재구성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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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권정생은 가난했고 몸이 아팠다. 그는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삶의 자취가 ‘글’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데다 문장 수업이나 글쓰기 지도를 받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문학에 대한 열망이 컸다. 1955년 부산 초량동의 재봉기 가게에서 일하던 열여덟살의 권정생은 청소년 월간 잡지 ‘학원’ 독자문예란에 소년소설 ‘여선생’을 응모했다. 가난한 살림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누나가 남동생과 여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권정생의 첫 지면 발표작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권정생의 회고에만 있을 뿐 원본을 찾기 힘들었다. 실제 지면에는 작자 이름이 ‘전경수’로 나갔기 때문이다. 전경수는 권정생의 어린 시절 이름인 권경수의 오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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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의 11주기를 앞두고 그의 삶과 문학을 재구성한 전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산처럼)이 출간됐다. 전기 전문 작가 이충렬이 2년여 자료와 증언 등을 수집해 썼다. 권정생이 겪었던 가난과 병고, 교회 종지기로서의 삶,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과의 관계 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번 전기는 여기에 권정생의 문학적 좌절과 도전의 기록을 더해 작가로서의 온전한 생애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충렬 작가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권정생의 삶이 어떻게 작품으로 나아갔는지, 그의 작가정신은 무엇이었는지 파헤치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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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첫 지면 발표작 ‘여선생’을 발굴해 실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오세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여선생’에 대한 해제에서 “권정생 문학의 작은 씨앗과 같다”고 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누나, 그리고 누나를 학교로 이끌어준 여선생님은 추후 <몽실언니>의 ‘몽실’처럼 ‘착한 모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책에선 권정생이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주제의식은 어디서 나왔는지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서른이 되기 전 폐결핵과 늑막염을 앓고 방광 절제 수술까지 받았던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 문학공모전에 도전했다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거기서 배움을 얻고 앞으로 나아갔던 작가로 기억된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권정생이 한 여인을 오랫동안 만났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 작가는 그 여인을 실제로 만나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들었다. 그 여인은 권정생의 지인 이현주 목사를 통해 ‘대리 청혼’을 받기도 했다. 결국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둘은 오래 곁에 머물며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이 작가는 권정생의 수필, 일기, 편지 등 관련 자료와 지인들의 증언을 몇 번씩 맞춰가며 수정·보완 과정을 거쳤다. “권정생 전기의 정본(定本)이 되기를” 바라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작가는 “권정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의 작가였다”고 말했다. 권정생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강아지똥>은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가는 “권정생은 작품에서 더불어 서로 사랑하고 보듬고 함께 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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