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 때도 지금처럼 특위가 여러 차례 꾸려진 바 있다. 하지만 개정안을 반드시 특위를 거쳐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정해진 규칙은 없다. 게다가 특위가 출범하지 않은 때에도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라는 나름의 상설위원회가 있어 형식상으로는 특위와 비슷한 역할을 맡아 왔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조세법 |
그렇다면 출범이 수차례 연기되고 또 위원장 인선에서도 숱한 난항을 겪으면서까지 청와대가 특위 구성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사례에서 그 배경을 짐작해봄 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말쯤 개최된 정책기획위 간담회에서 조세와 재정정책의 근본적 혁신안을 마련해달라는 강력한 주문을 한 바 있다. 단순히 집값 잡는 세금에 대한 논의 차원이 아니라 대통령의 머릿속에 세제 전반에 대한 개혁의 큰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세제개혁의 강도가 세질수록 조세저항 역시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개혁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국민 다수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세금은 거위가 아픔을 느끼지 않게 털을 뽑는 것처럼 거둬야 한다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돈 문제만큼은 국민의 생각이 서로 달라 합의안을 도출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경세가들의 보편적 믿음이었다. 그런데 최근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공론화위를 통해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봉합된 사례에서 청와대는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래서 원전 갈등보다 스케일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세제개혁을 국민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하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절차적 도구가 이번 특위인 셈이다.
논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우려되는 문제가 있다. 그 우려는 국민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후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다듬어 서로 합의할 수준에 이르게 할 만큼 공론화 과정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유세에 대한 특위 권고안을 국민여론 수렴을 거쳐 6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한다. 특위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결론을 내겠다는데 이런 절차적 과정을 놓고 국민여론을 제대로 수렴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터이다. 한 나라의 조세제도는 생활세금 수준이 아니다. 특히 근본적 세제개혁을 달성하려면 더욱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만약 보도된 식이라면 특위 없이 상설위원회를 거치는 것과 실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세제개혁은 국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에 다다랐을 때야 비로소 달성 가능하고 또 지속될 수 있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조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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