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외로움 장관’·아일랜드 ‘외로움 TF’ 두고 해결 나서
현대사회 ‘고질병’ 인식…일각 “실업·이민자 등에 집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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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시민사회부 장관은 지난 1월 영국의 첫 ‘외로움 장관’을 겸직하게 됐다. 2016년 첫 아이 프레디를 낳고 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기에 외로운 사람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크라우치는 지난달 11일 더선 기고에서 “장관 임명 후 외로움을 호소하는 10대 청소년과 젊은 엄마들로부터 e메일이 쏟아졌다”며 “정부 차원의 외로움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외로움 장관직을 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을 국가 보건정책의 의제로 다루려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가장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 통계청은 지난달 10일 외로움 장관 주도로 실시한 ‘외로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연령·경제력·혼인 여부 등 34개 지표로 나누어 개인들이 느끼는 외로움 정도를 비교한 뒤, 그중 13개 요인이 외로움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렸다. 외로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만성 질환을 앓고 배우자 없이 혼자 살아가는 65세 이상 노인’ ‘거주 지역에 소속감이 없는 청년 임차인’ 등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외로움 대책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영국의 움직임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네덜란드 공공보건부는 지난 3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2600만유로(약 331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외로움의 징후를 감지하는 특별 교육을 실시한 뒤, 75세 이상 노인들의 자택에 연 1회 방문하도록 했다.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이 지자체 공무원을 상대로 상담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연중무휴 핫라인’도 설치한다. 노인의 54%가 외로움을, 11%가 심한 외로움을 호소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다.
아일랜드에서도 지난 3월 ‘외로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의사 출신의 키스 스와닉 공화당 의원과 자선단체 ‘얼론’이 손을 잡고 팀을 꾸렸다. TF는 의사, 청년, 지역사회 주민 등 각계를 대변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숀 모이니한 얼론 대표는 아이리시이그제미너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부에서 외로움 문제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전국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F는 오는 6월 중 아일랜드 정부에 정책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과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의 연정 협상에서 외로움 문제가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 2월 사민당 내 공공보건 전문가인 칼 라우터바크 의원은 현지 매체 빌트에 “보건당국 내 외로움 대책을 총괄할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민련에서 가족정책을 담당하는 마르큐스 베인베르그 의원도 “외로움 논의에 대한 금기를 깰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영국처럼 장관직을 신설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외로움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합의를 본 것이다.
외로움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수백만명의 사람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영국 정부가 지난 1월 인용한 ‘조콕스 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9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한 달 이상 친구나 친척과 대화하지 않았다고 답한 노인도 20만명에 달했다.
젊은 층도 외로움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16~24세 청년 10명 중 1명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꼈으며 이는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수치였다.
외로움이 정신적·신체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줄리언 홀트-룬스타드 브리검영대학 연구팀은 2010년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외로움이 심혈관 질환, 치매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비벡 머시 미 연방의무감은 지난해 9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사람들은 담배를 끊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에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로움을 하나의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외로움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존 카시오포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일시적인 외로움은 삶을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카시오포 교수는 외로움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외로움을 위험한 질병으로 묘사하는 것은 외로움을 고민 상담 수준으로 격하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인 모두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하기보다는 실업자, 저소득 1인 가구, 이민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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