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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미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이슬람종주국 사우디 '미묘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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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언론, 팔레스타인 시위 외신 인용 보도…이란 위협 부각

사우디, 중동 정책 '대전환' 신호로 해석

연합뉴스

사우디 국기[EPA=연합뉴스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관을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에 맞춰 14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을 강행, 결국 이슬람권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성지인 데다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해 팔레스타인을 내쫓고 점령한 곳이다.

미국은 국제적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 대사관을 이곳으로 옮김으로써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유대교 국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는 깃발을 꽂은 셈이다.

팔레스타인은 이 때문에 이민족, 이종교에 핍박받는 무슬림의 상징이었다. 종파와 관계없이 이슬람권에서는 팔레스타인은 동조와 동정의 대상이다.

이런 역사,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슬람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누구보다 앞장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야 할 터다.

하지만 14일 사우디는 이런 '당위'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행보를 보였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2월 7일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겠다고 선언하자 즉각 반발한 다른 이슬람권과 달리 약간 머뭇거렸다.

며칠 뒤에서야 사우디는 이 선언에 유감을 표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자국의 최우선 문제라고 발표하긴 했다.

실제 미 대사관 이전을 앞두고 사우디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무슬림으로서 가장 분노해야 할 14일에도 사우디는 사실상 침묵했다.

사우디 국영언론은 서방 외신을 인용해 팔레스타인의 반대 시위, 미 대사관 이전 소식을 인용해 보도했고, 왕실이나 외무부도 따로 비판 성명을 내지 않았다.

사우디 언론은 이날도 이란이 중동에서 군사적 위협을 고조하고 있다는 보도를 주로 보도했다.

다만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연맹은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비상 회의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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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반기는 이스라엘 시민들[EPA=연합뉴스자료사진]



사우디의 이런 '미묘한 침묵'은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사우디는 지역 경쟁국 이란을 고리로 이슬람권에서 금기시했던 이스라엘과 거리를 좁혀왔다.

특히 2015년 1월 살만 국왕 취임 뒤 아들 무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실세로 떠오르면서 이란과 단교, 예멘 내전 개입 등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강화했다.

그만큼 이란과 앙숙 관계인 이스라엘과 공유할 공간이 커진 셈이다.

이슬람국가(IS) 사태와 아랍의 봄 이후 혼란에 빠진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이란에 맞서려면 사우디로선 '적의 적'인 이스라엘과 '대이란 공동전선'이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사우디가 70년간 멀리했던 이스라엘과 접촉해 중동 정책을 대전환할 것이라는 신호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3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더 또렷해졌다.

그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도 자신의 땅에 살 권리가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스라엘과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슬람권 상당수 국가가 아직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미 기간 유대교 지도자들을 만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으로 문제가 장기화하는 상황에 못마땅해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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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AFP=연합뉴스자료사진]



이를 두고 사우디가 손자 세대에서 첫 1순위 후계자인 무함마드 왕세자 시대를 맞아 이전 세대에서 고착돼 이어지는 중동 역학 관계를 과감히 뒤흔들어 이란과 패권경쟁에서 수를 던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란 핵협상을 추진했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와 소원했던 사우디는 이란에 매우 적대적인 트럼프 정부로 교체되자마자 미국과 급속히 밀착하고 이란에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친유대계가 장악한 미국 행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이스라엘과 마찰을 빚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이스라엘에 동조하는 쪽으로 기운다면 이란에는 큰 압박이 될 수 있으나, 이슬람 종주국으로서 위상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사우디가 아랍 이슬람권에서 이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곧 도래할 무함마드 왕세자 통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반면, 정작 아랍권이 아닌 이란이 미 대사관 이전을 수차례 강하게 비판했다.

이란 외무부는 14일 "미 대사관 이전은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에 맞서는 탄압받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단호함과 결의를 더 견고하게 할 뿐"이라며 대사관 이전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공모한 테러행위라고 규정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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