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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홍대 몰카 논란…여성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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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범 여성이라서가 아닌 그간 수사당국의 행태 비판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 요청’ 청원 이틀 만에 20만 넘어
경찰, 성폭력 조사 개선 움직임은 1998년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째 현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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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인체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진 동료모델 안모(25.여)씨가 12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마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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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홍익대학교 미대 수업 과정에서 누드크로키 남성 모델의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포한 여성이 검거되면서 수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여성들은 피해자가 남성인 이유로 수사가 이례적으로 신속히 진행됐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남성의 경우 무죄 사례, 그동안 경찰이 여성들을 상대로 진행한 수사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경찰은 수사 속도에 대해 성별은 관계없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경찰의 입장은 동의할 수 없고 여성들의 분노는 그간 경찰이 보여준 성폭력 수사 행태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해당 사건과 관련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11일 올라와 14일 오후 4시 기준 청원 30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의 제목은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로,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준 20만은 청원 게시 이틀 만에 넘어섰다.

또 지난 10일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 카페는 개설 나흘 만에 회원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회원들은 오는 19일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홍익대 사건은 수사 장소와 대상이 특정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번 사건은 범행 장소가 미대 교실이고 (수업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대상이) 특정됐다”며 “용의자들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최근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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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검거 속도가 아닌 경찰의 과거 성폭력 수사 관행과 맞물려 분노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현재 여성들의 주장은 몰카 수사에 대한 △검거율△구속률 등 일련의 성폭력 사건 처리 결과가 아닌 그동안 경찰이 피해 여성에게 보여준 성폭력 수사 관행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비단 해당 사건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성 피의자의 포토라인’ 등 문제가 여성들이 분노하는 이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는 지난 11일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같은 사건도 (수사가) 달라진다는 현실 인식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남성과 여성 피해사례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남성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사소화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홍대 사건의 가해 집단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동안, 우리가 지원하는 여성 피해자는 포르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며 “지난 300여 명의 여성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의 지난함을 떠올리며 이 격차를 ‘상향 평준화’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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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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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간 경찰은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수사를 하면서 피해자 인격 침해 등의 이유로 수사 제도를 꾸준히 개선했다.

먼저 1998년 ‘성폭력피해자권리헌장’이 선포된 이후 2003년에는 성폭력피해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제8차 개정이 이루어졌다. 또 2005년에는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2차피해자화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범죄피해자보호법 이 제정됨으로써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이차피해자화 방지 및 피해자지원을 위한 법제도를 마련했다.

성폭력피해자권리헌장은 ①직업, 나이, 이전의 성경험, 가해자와의 관계와 상관없이 피해자로 인정받고 대우 받을 권리, ②사건과 관련된 질문만 받을 권리, ③이전의 성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지않을 권리, ④고소시 자신의 신분이 외부로 노출되지않고 보호받을 권리, ⑤신변안전조치를 요청할 권리, ⑥편안한 환경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가족, 변호사, 상담원과 배석할권리, ⑦비공개재판을 신청할 권리, ⑧가해자가 있는 자리에서 증언하기 어려울 경우,가해자의 퇴정을 신청할 권리, ⑨가해자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묻고 보상을 요구할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해당 규정 등이 제도적으로 준비가 되기 전 성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에도 경찰의 여성 피해자 성폭력 수사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경찰은 지난 11일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성폭력 피해자 표준조사모델 개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번 TF는 성폭력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이해 부족으로 피해자가 비난을 받거나 조사 공간의 문제 등으로 △피해자에게 예기치 못한 2차 피해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TF에는 경찰청 직원 4명, 수사관 5명, 해바라기센터 수사관 2명, 외부 전문가 5명 등 총 16명이 투입됐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지난해 상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상담 869건 가운데 2차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률이 19.3%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경찰, 검찰, 법원 등 수사ㆍ재판과정에서의 2차 가해가 17.5%로 세 번째로 높았다.

실제로 신고 접수단계에서 경찰이 “모텔 가는 것 자체가 동의 아니냐? 왜 처음부터 신고하지 않았느냐”, “신고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무고죄가 될 수도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피해자를 위축시키거나 사건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례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미투(#metoo·나도당했다) 운동으로 다시 불거진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의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은 TF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 표준조사모델안을 오는 7월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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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몰카 사건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어…상대적 박탈감 있을 수밖에

이 가운데 최근 무죄로 판결이 난 몰카 사건을 비롯해, 사건 자체 검거율은 높지만 낮은 기소율 역시 여성들의 분노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1월 대법원 2부는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29)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법원은 무죄 취지 이유에 대해 “A씨 행동이 부적절하고 불안감과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촬영된 신체 부위가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법원 관계자는 “옷을 입은 상반신을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 촬영된 신체부위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 되버린 셈이다.

또 같은 해 12월 법원은 여자 수영선수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기소된 남자 수영선수들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여자 탈의실에서 찍은 동영상을 봤다는 사람은 있지만, 그 동영상이 언제 어디서 찍은 동영상인지 알 수 없다”며 “자백을 했더라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역시 몰카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사실상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 되버렸다.

앞서 지난 2015년에는 의학전문대학원생이 183명의 몰카를 찍고도 기소 유예를 선고받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검찰은 피의자의 범죄가 우발적이었고 그가 잘못을 반성한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또 대검찰청 2017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6년에 발생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몰래카메라 범죄, 이하 몰카)는 총 5249건에 달했다. 이 중 4968건이 검거돼 검거율은 94.6%에 달했다. 하지만 이 범죄로 기소된 1716건 중 구속 사건은 154건에 불과했고, 벌금형을 구하는 구약식 사건은 81건이었다. 몰카 사건 검거율은 높지만 처벌 수위가 낮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련 기사에는 비판성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네티즌들은 “만연하는 여성대상 몰카는 처벌이 무혐의...말이된다고 생각하나 구글에만 쳐봐도 여자들 몰카는 넘쳐난다. 이게 정상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아 그래요? 그럼 대체 저희 상담소에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은 뭔가요? 경찰이 수사 제대로 안 받아줬다고 울면서 죽고싶다고 오시던데”, “강간당했다고 신고해도 한 달째 가해자 조사도 안 받았는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피해자는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고작 병원 가서 심리 치료받고 약 처방 받아서 그거 먹고 잠드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이번 논란에 대해 여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로서 사건을 신고하거나 해결하는 과정에 있는 분들의 박탈감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 뒤 ”‘왜 내 사건에서는 더디고 미뤄지기만 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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