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급증에서부터 역전세난ㆍ가격 급락ㆍ거래 위축
우려했던 주택 공급 과잉의 재앙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입주가 안 돼 빈 집이 수두룩하고 기존 주택시장도 침체돼 거래가 안 된다고 야단이다. 살던 집이 안 팔려 분양받은 아파트로 옮겨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잔금을 못 치러 연체 이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잔금은 전세를 놓아 해결하려 해도 세입자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출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규제 강화로 대출금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너무 많아서 생긴 현상들이다. 여기다가 주택경기까지 가라앉아 구매력 감퇴가 예사롭지 않다. 주택시장을 이중 삼중으로 묶어 놓아 탈출구마저 안 보인다.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신도시이야 그렇다 치고 주변의 기존 아파트 단지도 부작용이 심하다. 전세 수요자들이 전셋값이 싼 신도시 아파트로 대거 빠져나가 역 전세난이 심각하다. 계약이 만료돼도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없어 순환이 안 된다. 집주인이 돈이 없다며 전세금을 내주지 않아서 그렇다. 전세금 반환 소송으로 해결하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다.
전세 분쟁이 곳곳에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기존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려 했던 당초 계획이 무너지면서 손해가 막심하다.
공급 과잉은 매매가·전세가 하락이라는 순 기능보다 이로 인한 부작용만 잔뜩 쏟아내고 있는 꼴이다.
이는 2~3년 전 주택인·허가 물량이 넘쳐날 때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수급 조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정부는 가만히 있었다. 그냥 집값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다.
엄청난 주택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주택 가격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으니 정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존 주택시장은 다른 수단으로 제어했어야 옳았다. 공급보다 폭증하는 구매 수요를 먼저 억제하는 게 급선무였다. 공급의 효과는 입주 때 나타나는 법이다. 인·허가 물량이 넘쳐나 개발 붐이 일 때는 오히려 집값은 더 오르게 돼 있다. 분당·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개발 때도 그랬다. 당시 1989~92년까지는 아파트 분양 물량이 봇물을 이뤘고 덩달아 기존 주택시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주 아파트가 대량 쏟아지자 그때야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한 경기 침체로 주택업체들의 부도 사태가 잇따랐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실수요자들도 여러 악영향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정을 너무 잘 아는 국토교통부 당국은 왜 손을 놓고 있었을까. 어느 당이 집권하던 담당 부처 공무원은 바뀌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치권 간섭이 있다 해도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이에 따라 정책을 펴나갔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라고 종용해도 시장 흐름을 면밀히 살피면서 적절한 대응을 곁들여야 했다.
각종 부양책으로 인해 생기는 투기 수요를 어떻게 다 막아 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런 문제 해결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수요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정부는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낌새가 이상하면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가 곪아 터질 때 허겁지겁 대책을 내놓아 본들 치료시기를 놓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부양할 때는 왕창 풀어주고 반대로 억제할 때는 숨을 못 쉴 정도로 목을 죄니 경기가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더 있나.
시장 악화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아도 당국의 공무원은 책임지지 않는다. 반대로 집값이 너무 올라 무주택자가 상실감에 빠져도 마찬가지다.
이를 보면 정부는 정책 실패로 생기는 경제적 손실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10년 전에 벌어졌던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전에도 과열된 주택시장을 잡는다며 과도한 규제를 내놓는 바람에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거래 절벽 상황을 만들었다. 집값이 떨어져 빚이 더 많은 깡통 주택이 속출했고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경매 당하는 사례가 각지에서 벌어졌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심한 고통을 받기도 했고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수요자들은 주택업체 부도로 허망한 꼴을 당해야 했다. 게다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까지 덮쳐 다른 산업도 그렇지만 주택 분야는 유독 큰 아픔을 겪었다.
지금 흘러가는 본새를 보면 그때의 악몽이 재현될까 두렵다. 시장을 부풀려 비싼 값에 아파트를 팔고 나간 주택업체는 희희낙락할지 모르지만 주택을 사준 수요자는 큰 고통을 겪어야 할 처지다.
앞으로 미국의 금리 추가 인상까지 단행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주택 자금의 절반 정도가 대출로 충당하는 구조에서는 금리 인상은 치명적이다. 현재도 대출 금리가 5% 대로 진입하고 있어 자금 압박이 적지 않다. 이게 심해지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은행 이자 내고 나면 쓸 돈이 별로 없어 소비를 줄이게 된다는 말이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소비 감소는 기업 생산 악화로 이어지고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줄어들어 그만큼 서민 경제는 팍팍해진다는 뜻이다.
전국 아파트 입주율이 6개월째 70%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열 집 중 세 집이 비어있다는 소리다.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 쏟아질 입주 물량을 감안하면 분위기는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공급 과잉이 불러온 저주가 서서히 확산하는 양상이다.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대응 방안을 모색해 놓아야 한다.
[이투데이/최영진 기자(choibak14@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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