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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데스크칼럼]물컵은 어떻게 쓰나미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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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사회부장] 시작은 사소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 앱에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회의 중 고성을 지르고 욕설과 함께 물컵을 던졌다는 글이 올라온 게 시작이었다. 조 전 전무는 ‘광고를 잘 만들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하고 휴가를 갔다.

이데일리

회의 중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것은 많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이다. 경찰이 한달 가까이 수사를 했지만 업무방해 외에는 특별한 불법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반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욕설과 음료수를 뿌린 행위는 피의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한 ‘반의사 불벌죄’다.

하지만 사람도 아닌 벽을 향해 던진 물컵이 쓰나미로 되돌아와 한진 일가를 덮쳤다. 물컵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조씨 일가가 벌여온 갑질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었고 경찰에 이어 관세청, 검찰, 출입국당국까지 나섰다. 죄명도 폭행, 밀수, 탈세, 배임, 횡령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동안 쌓은 업보의 결과이자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최악의 대응 탓이다.

‘갑질’ 한진의 ‘삽질’ 대응을 결정적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 장면부터 한숨이 나온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문제를 인지한 시점에 곧바로 해야 한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조 전 전무는 그제서야 회사 홍보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과를 전했다고 짧게 해명했다.

불똥이 조양호 회장의 부인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까지 튀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진그룹은 의혹보도가 줄을 잇고 있음에도 “확인할 수 없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뒤늦게 내놓은 사과문은 사과 한줄에 해명은 A4지로만 5장짜리 분량이었다. 심지어 ‘사실을 인정하고 뉘우친다’고 해놓고는 그동안 제기된 18가지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잘못한 게 없다면서 뭘 인정하고 왜 뉘우치겠다는 건지 모를 사과문이다.

사과는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한다. 물컵은 얼굴을 보면서 던지고 사과는 문자로 한다? 갑질 사과다.

사과에 담아선 안될 단어가 단어가 ‘사실은’, ‘그렇지만’과 같은 해명과 변명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피해자가 말할 때 가해자는 입을 닫는 게 예의이자 일을 키우지 않는 방법이다.

오너일가 문제로 여러차례 곤혹을 치룬 모 그룹 임원는 이렇게 돌이켰다. “오너 일가와 관련한 문제가 터지면 멀리 해야 할 부서가 법무팀이에요. 오너 입장에선 ‘법적으로는 책임없다. 사과하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에 혹 할 수 밖에 없죠.”

불교용어 중에 ‘카르마’(Karman)라는 게 있다. 의역하면 ‘업보’(業報)다. 악업은 선업으로 갚아야 하고 현생에서 다 갚지 못하면 저승에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한다.

다만 천만영화 ‘신과 함께’에서 이정재가 분한 염라는 현실의 우리도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놓았다. “이승에서 진심으로 용서받은 자는 저승에서 처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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