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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글로벌 이슈/박민우]팔레스타인이 분노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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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예루살렘을 다시 찾았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라고 선언한 직후에도 예루살렘에 왔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당초 백악관은 미국대사관 이전이 3, 4년 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는 백악관의 전망이 “매우 낙관적”이라면서 5∼10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 국무부는 올해 2월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에 맞춰 새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에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미국대사관이 제때 이전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국가계획위원회는 3월 미국대사관이 들어설 예루살렘 아르노나 지역의 건설 규제를 면제하기로 했다.

최소 3년이 걸린다던 미국대사관 이전 계획이 불과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올해 1월부터 “미국대사관이 앞으로 1년 내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이라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대사관 이전이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나의 확고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 현장을 취재하러 기자는 예루살렘에 다시 왔다.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아르노나에서 본 미국대사관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미국대사관 이전 개관식을 앞두고 극명하게 갈렸던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얼굴 표정이다.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선물’까지 받게 된 유대인들은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나같이 긴 한숨부터 내쉬며 미국대사관 이전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스라엘은 1947년 유엔 분할안에 따라 영국령 팔레스타인이 유대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분리되자 이듬해 5월 14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독립 선언 바로 다음 날 시작된,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 5개국 연합군의 총공격(1차 중동전쟁)을 막아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의 건국은 대재앙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원주민들에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강요했다. 당시 140만 명의 주민 가운데 약 80만 명이 유대인에게 고향 땅을 빼앗긴 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떠나야 했다. 일부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 아랍 국가로 향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분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높이 8m, 길이 700km에 달하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쌓았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증 없이는 체크포인트(검문소)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예루살렘을 강제 병합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성지(聖地)를 팔레스타인과 결코 나눠 가질 생각이 없다.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의 소유가 아닌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1980년 예루살렘을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절 바로 다음 날을 ‘나크바 데이(대재앙의 날)’로 삼아 그때의 치욕을 70년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장벽에 가로막혀 예루살렘에 올 수도 없다. 정작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먹고살기에 바빠 시위에 참여하진 못할 것 같다”고 읊조렸다.

고향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땅을 빼앗은 이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지난 70년간 매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 느낌과 기분은 어떤 것일까.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예루살렘에서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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