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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사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영변 쇼’ 전철 밟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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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단에 전문가 제외 ‘반쪽 검증’/ 10년 전 냉각탑 폭파 후 몰래 개발/ 전면 핵 폐기 때까지 방심은 금물

북한이 오는 23∼25일 함경북도 길주군의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공개 폐쇄하겠다고 했다. 북한 외무성은 그제 공보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와 동시에 경비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실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부터 2017년 9월까지 핵실험이 모두 여섯 차례 이뤄진 곳이다.

북한은 폭파 현장 참관을 위해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한국의 기자들을 초청키로 했다. 북핵 당사국 중에서 싫은 소리를 많이 하는 일본만 쏙 뺐다. 특히 전문가를 배제하고 언론만 초청하는 것은 ‘반쪽 검증’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전문가를 초청할 경우 북한의 핵 제조 능력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판단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면 굳이 제조 능력을 감출 이유가 없을 것이다. 진정성에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핵실험장 폐쇄현장에 유엔이 함께해 폐기를 확인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백악관도 “국제전문가들에 의해 사찰 및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는 북한의 비핵화에서 핵심 조치”라고 밝혔다.

이번 핵실험장 폐쇄 발표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처음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안도할 계제는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개발 능력까지 아예 없애는 ‘완전한 비핵화’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완성했다고 밝힌 핵무기의 처리에 대해선 아직 아무 언급이 없다. 앞으로 핵을 더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핵 완성을 선언한 마당에 핵실험장 폐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수없이 뒤집은 ‘양치기 소년’ 행태를 반복해 왔다. 2008년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다며 영변 5㎿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벌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냉각탑을 폭파해 국제사회를 안심시켜 놓고 몰래 핵실험을 계속해 왔다. 그로부터 불과 1년도 안 돼 2차 핵실험 사태가 터졌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로 시작될 비핵화 작업도 영변 전철을 밟을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20억달러의 지원을 받은 과거의 사례에 비춰 볼 때 이번에도 대북 제재 해제와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발표에 대해 “남북정상회담 때의 약속 이행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고 했다. 북의 조치가 반갑지만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풍계리 갱도를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여정의 축포가 되기를 바란다”는 청와대의 소망대로 전면적인 핵 폐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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