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불 것 같던 국회는 어쩌다 사각지대가 됐나?
국회 보좌진들의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미투에 대한 기대가 흘러나왔다. 한 직원은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에 스며들어 있었던 성의 강제성들, 다 흔들리고 몰아쳐서 바닥에 떨어질 썩은 과일들은 다 떨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투 돌풍을 기대했던 이들의 바람과 달리 국회는 미투의 무풍지대였다. 대신 '받은 글'이라는 정체 모를 '지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지라시'에는 미투를 외친 성폭력 피해자를 음해하는 2차 가해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국회 첫 미투를 외쳤던 피해자 A 씨는 9일 결국 단상에 섰다. '국회는 미투 사각지대인가'(유승희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피해자 A씨는 국회에서 또 다른 미투가 나올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유승희 의원실 |
피해자 A 씨는 "제가 미투를 외치고 처음 기대했던 것은 적어도 두세 명 정도의 후발주자들이 나서 주는 것이었다"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시작이자 끝이 될 수도 있는 것을, 2차 가해가 벌어지면서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은 글('지라시')을 복사해서 나르고 그 얘기를 가십성으로 소비하는 등, 악의 없이 하는 행동일수도 잇겠지만 저한테는 2차 가해가 된다"라며 "그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A 씨는 "남성 중심 문화가 팽배한 국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카더라' 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피해자의 피해사실은 논외가 되는 경우 많다"라며 "가해자는 자신의 (성추행) 행위에 대한 인정은 없고 단지 (성폭력 문제가) 남녀 사이의 문제인 것처럼 표현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했고, 그런 내용은 국회 전체에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추행을 당한 게 아니라 상호 간의 뭔가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와전되어서 돌았고 소위 말하는 꽃뱀처럼 몰리는 경우가 됐다"라며 "결국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그 사람(가해 지목인)과 저와의 이성적 관계에 집중된 것이다"라고 2차 피해를 호소했다.
피해자 A 씨는 여성을 배제하는 '펜스룰'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투가 나온 이후에 어느 의원실에서는 농담으로 '여자직원을 뽑으면 안 되겠다', '술자리도 가면 안 되겠다'라고 한다"라며 "그것조차도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피해사실 알릴 수 없는 조치가 된다"라고 말했다. A 씨는 "보좌진들은 평판 조회를 통해 다른 의원실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찍혀버리면 다음 취업에 제약을 받는다"며 "지금도 아마 가슴앓이하고 있지만 얘기 못 하는 사람 많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A 씨는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강조했다. A 씨는 "(본인의 사례가) 국회 내에서 미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첫 사례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성범죄, 성희롱 사건에 대한 국회 내 징계절차에 대한 매뉴얼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신속하게 처리되고 피해자가 일상에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나는 (미투에 대한) 고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현 의원실에서 조력을 받고 있다"라며 "'그 사건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네가 뭘 하든 지지한다' 라고 얘기했던 동료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A 씨는 "많은 사람이 전에 있었던, 현재 있는, 앞으로 가야 하는 의원실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저처럼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법적 조치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국회 현실"이라며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제가 받는 지지처럼 먼저 도움의 손길 내밀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여성정책연구회 대표 이보라 보좌관은 "저도 현직 보좌관이지만 피해자의 증언에 공감하지 않을 내용이 없다"라며 "일상적인 업무에서조차 성폭력이 얼마나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는지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피해자는 언론과 협업해 기사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을 가진 직책인 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을 알리는 데는 가장 관심받지 못하는 국회 홈페이지 소통광장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여성들의 빈약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안으로 ▲ 보좌진 성별비율 공시 ▲ 각 당 보좌진협의회 소속 성폭력 피해 상담 기구 신설 ▲ 성평등 의정활동 지원센터 설립 등을 제시했다.
기자 : 박정연 기자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