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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if] 42년 만에 잡힌 美 연쇄살인범… 'DNA 족보 사이트'에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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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범이 첫 범죄를 저지른 지 42년 만에 체포됐다. 미국 새크라멘토 경찰은 지난달 24일 전직 경찰관 출신인 조지프 제임스 디앤젤로(72)를 검거해 증거가 확보된 여섯 건의 살인 혐의로 송치했다.

이날 새크라멘토 경찰은 DNA 족보 사이트 덕분에 디앤젤로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 디앤젤로는 검거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용의선상에 전혀 오르지 않았던 인물이다. DNA는 어떻게 연쇄 살인범을 지목할 수 있었을까.

◇DNA 족보 사이트에서 범인 친척 찾아

1976년에서 1986년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12명이 살해되고 최소 50명이 강간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주의 별칭)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장갑과 마스크를 쓰고 증거물을 남기지 않는 치밀한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해갔다.

경찰은 이미 1980년에 발생한 한 살인 사건에서 범인의 DNA를 확보했지만 당시는 DNA 수사 기법이 막 태동할 무렵이어서 수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97년부터 코디스(CODIS·Combined DNA Index System, 통합 DNA 색인 시스템)란 이름의 범죄자 유전자 정보 은행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나중에 코디스에서도 범인의 DNA와 일치하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다른 범죄로 체포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경찰은 민간 DNA 족보 사이트인 GED매치를 이용했다. 미국에는 23앤드미처럼 돈을 받고 개인의 DNA 정보를 해독해주는 업체들이 많다. GED매치는 개인이 올린 DNA 정보를 다른 사람이 올린 DNA와 비교해 친척 관계를 알려준다. 경찰은 GED매치에서 범인과 고조모(高祖母)가 같은 사람을 찾아냈다.

이후 수사는 기존 방법대로 이뤄졌다. 범인의 먼 친척 주변을 탐문해 용의자를 좁혀갔다. 최종적으로 디앤젤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의 DNA를 구해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DNA와 비교했다. 칫솔이나 컵 등에는 물건을 쓴 사람의 DNA가 묻어있다. 결과는 완전 일치였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를 찾아낸 것이다.

◇민간과 경찰의 DNA 은행 정보 달라

왜 미국 경찰은 민간 DNA 족보 사이트를 이용했을까. 이는 경찰과 민간의 DNA 정보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DNA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염기들로 구성된다. 생명체는 이 염기들의 순서대로 인체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 단백질을 합성한다. 즉 염기서열이 생명의 설계도인 셈이다.

 



조선비즈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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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범죄자 유전자 정보 은행에는 '짧은 연쇄 반복 염기서열(STR·Short Tandem Repeat)'이라는 DNA 정보들을 저장하고 있다. STR은 DNA에서 2~5개의 염기로 이뤄된 짧은 서열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AGCAGCAGC'와 같은 형태다. STR은 개인마다 다르다. 즉 특정 STR의 형태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FBI는 STR 20종으로 DNA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며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범죄자 신원 확인에 STR 20종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STR은 본인이나 부모, 형제까지만 구분할 수 있다. 디앤젤로는 물론, 가족들도 범죄자 유전자 은행에 정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정보량이 부족한데도 경찰이 STR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것은 STR에는 질병 관련 유전정보와 같이 민감한 개인 정보가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민간 사이트 GED매치는 '단일 염기 다형성(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란 DNA 정보를 이용한다. SNP는 DNA의 특정 위치에서 염기 하나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머리카락이나 눈 색깔이 다른 것도 SNP 때문이다. SNP는 지금까지 1000만개 이상이 발견됐다. STR보다 비교 대상이 훨씬 많아 먼 친척까지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민간 유전자 DB 활용 못해

이번 사건은 유전자 정보 보호에 대한 논란도 불러왔다. 민간 족보 사이트에 자신의 DNA 정보를 올린 것은 친척을 찾기 위한 것이지 경찰 수사에 정보로 활용하라고 허락한 게 아니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요 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폭넓게 허용하는 환경이어서 아직 불법 수사라는 말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1개 주요 범죄로 구속된 피의자나 수형인에 대해서만 DNA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만큼 정보량도 적다. 미국은 수천만명에 대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은 20만명 정도에 그친다. 국과수 관계자는 "민간 DNA 데이터베이스도 우리나라는 규모가 훨씬 작고, 그나마 법에 따라 경찰의 이용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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