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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北 풍계리 폐쇄는 비핵화 앞둔 핵동결…美제재 완화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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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선언 평화·번영의 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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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과정을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미·북 대화를 염두에 둔 선제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5월 말~6월 초 미·북정상회담에 앞서 보다 진전된 핵동결 사전 조치를 취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에 나설 보다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측이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밝힌 것처럼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상황에서 사실상 역할이 끝난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퍼포먼스' 적인 측면만을 강조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북측이 2008년 평안북도 영변 5㎿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을 국제사회에 공개하고 일정한 대가를 챙겼지만 결국 핵개발을 재개했던 것과 같은 결과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나온다. 결국 분명한 비핵화 조치로 보기엔 여전히 미흡하다는 이 같은 의심의 눈초리는 미·북 회담에서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가 결론이 나야 풀릴 전망이다.

일단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과정 공개 결정을 남북정상회담 석상을 통해 남측과의 사전 합의 없이 '깜짝 제안' 형식으로 내놓았다.

29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 이전에 이에 대한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예정된 합의가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실제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이러한 조치가 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에 담기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날(27일)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합의하고 발표하는 데 집중해 회담 과정의 여러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여유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청와대 측의 이 같은 설명을 감안하면 남북 양측은 미·북 대화의 모멘텀 강화 차원에서 이러한 내용을 판문점선언이 아닌 북측의 추가적인 비핵화 관련 선제적 조치 형식으로 발표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미·북 대화를 위한 '마중물'인 만큼 27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에서는 양측이 북측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와 평화·번영 의지를 명문화하는 선에서 절충했을 개연성도 있다.

특히 북측이 앞서 밝힌 핵실험장 폐쇄 작업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미국과의 본격적 핵담판에 앞서 국제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대해 일정 부분의 답을 내놓은 측면도 있다.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잇따른 핵실험과 지진 등의 문제로 이미 '사용불능' 상태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에게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큰 2개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부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측이 핵실험장 폐쇄를 공개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미·북정상회담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분명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더욱 진전된 대북 입장이나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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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핵실험장 폐쇄 공개 결정은 김 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에 이어 27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내놓은 두 번 째 핵동결 초기 조치다. 이는 2008년 영변 5㎿ 원자로 냉각탑 폭파 때와 '대내외적 공개'라는 형식적 측면은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제안 주체, 대가 유무, 조치의 실효성 등의 측면에서 2008년보다는 더욱 나아간 조치로 볼 수 있다.

2008년 영변 5㎿ 원자로 냉각탑 폭파는 북측과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밀당'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북측이 미·북정상회담 환경 조성 등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전략적' 결단을 내린 이번 경우와는 '진정성'의 측면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특히 북측은 2008년 당시에는 미국에 냉각탑 폭파를 위한 비용으로 500만달러(약 53억6500만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 측에서 북측과 협상을 벌여 250만달러(약 26억8250만원)를 건넸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북측이 명시적으로 '청구서'를 내밀지는 않았다.

콘크리트 옥외 구조물로서 수개월 만에 복원이 가능한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핵실험장 폐쇄는 협상 결렬 시 '복원' 가능성 측면에서도 차이가 상당하다. 추가적인 핵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실험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방사능 누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단단한 암반지대에 약 1㎞에 달하는 굴착·갱도 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냉각탑 폭파와는 달리 핵실험장 폐쇄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일각에선 대규모 공사를 통해 재건이 불가능한 수준의 폐쇄공사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북측에서 사실상 풍계리와 같은 환경을 가진 또 다른 핵실험장 건설 장소를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하더라도 옌지(연길) 등 중국 동북 3성 주요 도시에서도 분명한 떨림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중국과 보다 가까운 곳에 실험장을 만드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핵실험장 폐쇄작업 공개가 북측의 본질적인 핵능력에 대한 포기나 동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향후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가시적 조치에 합의하고 실제로 합의를 이행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편 핵실험장 폐쇄 작업 자체는 매우 수준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현재로서는 북측이 체계적인 핵실험장 폐쇄·봉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과정에서 한국 측 원자력 전문가들이 동행해 북측에 기술적 도움을 주는 한편 실효성 있는 폐쇄를 검증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대표적인 핵문제 전문가인 서균렬 서울대 교수는 "핵실험장 폐쇄는 본질적으로 토목공사지만 방사능 누출 위험을 제거하면서 관련 시설을 모두 철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원전 해체 기술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처럼 아예 1㎞에 이르는 갱도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막아버리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이 경우 핵실험장 내부가 최고 1억도까지 올라갔다 식었을 것이기 때문에 내부 균열을 모두 막아야 하는 문제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작업을 공개할지는 알 수 없지만 폐쇄 작업에 미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아닌 한국 측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면 핵문제를 남북이 함께 풀어간다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특별취재팀 = 안두원 기자(팀장) / 강계만 기자 / 김성훈 기자 / 오수현 기자 / 강봉진 기자 / 안병준 기자 / 김정범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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