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재벌 저승사자'의 효력은 과연 대단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지 1년도 채 안 돼 순환출자 고리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재벌 총수가의 부의 집중 수단으로 활용했던 순환출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를 뒷받침하는 세 개의 축 중 하나인 공정경제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 수는 6개 집단 41개 밖에 남지 않았다. 1년 전(282개)과 비교하면 85%가 줄었다. 남은 41개 순환출자 고리 역시 기업들이 자발적 노력을 통해 해소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순환출자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법을 만들 필요도 없게 됐다.
김 위원장이 '기업들의 자발적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법 개정 가능성을 열어놓고, 동시에 최고경영자(CEO) 등과도 만나 소통하는 등 다방면으로 압력을 가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SK, LG, 롯데에 이어 현대차도 총수 일가 사재 출연을 감수하며 과감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제시했고, 삼성 역시 나머지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순환출자 고리가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극적으로 줄어든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해결한 문제는 순환출자뿐만이 아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공정인 '갑질' 문제에 대해 ▲하도급 ▲가맹 ▲유통 ▲대리점 등 4대 분야에 걸쳐 근절 대책을 마련했고 로펌ㆍ기업과의 유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외부인 접촉 의무보고 규정을 도입, 금감원이 이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도입된 지 38년만에 처음으로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도 추진한다. 그야말로 공정경제 전성시대다.
하지만 공정경제와 함께 나머지 두 개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자리ㆍ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성과는 초라하다. 지난해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을 단행했음에도 고용지표는 악화돼 가고 있고,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역시 물가 상승에 가로막혀 체감이 힘들다. 혁신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당초 3월 중으로 청와대가 혁신성장 점검회의를 열고 각 부처별 혁신성장 성과를 점검키로 했지만, 벌써 4월이 지나가고 있다.
공정경제에 비해 소득주도성장이나 혁신성장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김 위원장처럼 걸출한 인물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소득주도성장이나 혁신성장의 개념이 명확하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한 거시경제학자는 "청와대가 모든 걸 주도하면서 '내각 패싱'이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성장'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혁신도, 성장도 다 하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민간이 움츠리고 있으면 일자리도 혁신도 생겨나지 않는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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