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변화 |
"정몽구 회장이 여전히 건재한 만큼 승계는 먼 얘기다. '승계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지주회사 등 지배구조 개편을 한다면 한꺼번에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다." (현대차그룹 전직 간부 A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아직 먼 얘기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구체화하라고 요구했던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지난 23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면서 복잡 다양해진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을 포함한 국내외 주요 주주와 투자자에게 앞서 발표한 출자구조 재편의 취지와 당위성을 계속 설명하고 소통해 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 정몽구 회장의 '신의 한수'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그림은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것이다.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현대자동차그룹 4개 계열사는 지난 3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리고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한 단계별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현대모비스가 그룹의 중심이 된 점이다. 현대모비스는 모듈 및 AS부품 사업 부문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시킨다. 현대모비스에 남는 사업은 핵심 부품과 투자다. 핵심 부품으로는 자율주행자동차와 커넥티드카 등 미래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현대모비스는 핵심 기술을 진화시키기 위해 국내외 스타트업들에 대한 지분 투자 및 협업, 조인트벤처(JV) 투자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당초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봤다. 통상 지주사가 될 회사는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분할한다. 하지만 현대차는 지주사 체제를 택하지 않았다.
증권가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정몽구 회장의 신의 한수로 평가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기다리던 지배구조 개편으로 그룹 실적 회복에 대한 확신이 가능해졌다"며 "그룹 내 각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시작되고, 주주친화정책도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분할 법인의 합병은 현대글로비스의 단순 주당순이익(EPS) 증가뿐 아니라 양사 간 사업 시너지 효과, 현금 창출력 증대에 따른 인수합병 재원확보, 성장 및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지주사 전환 없이 대주주가 지분을 사들이는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려면 기아차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모두 털어내야 된다. 이 과정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4조5000억원 가량을 들여 지분 매입에 나서야 한다. 세금도 1조원 이상 내야 한다.
대신증권 양지환 연구원은 "글로비스와 현대제철이 보유하게 될 존속모비스 지분인수에 소요될 자금만 1조2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글로비스 지분 처분에 따른 양도세 등을 감안하면 오너일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상당하다. 따라서 합병글로비스의 가치가 최대한 증가해야 순환출자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엘리엇 암초아닌 조약돌
하지만 계열사간 득실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맥쿼리증권은 "분할 합병 이후 모비스는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R&D)을 책임져야 하고, 이에 따라 현대차는 배당 성향을 늘려 모비스에 자금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며 현대차의 투자매력을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등 완성차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는 지배회사가 될 전망이다.
반면 기아자동차에 대해서는 "이번 개편안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기아차는 모비스 지분 16.88%를 내주고 글로비스 지분 10.38%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비스는 모비스의 분할 사업부문(국내 AS부문 등)을 큰 폭의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이게 되는 것"이라며 "AS 부문의 이익이 정점을 지난 상황이어서, 이번 개편안은 기아차에 장해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
당장 엘리엇이라는 암초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은 "현대모비스 주가가 반대매수 청구권 가격 대비 4% 격차인 상황에서 엘리엇 제안이 공개돼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현대차그룹은 사업 비전 제시와 주주 환원 정책 강화로 주주를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연구원은 "다음 달 말 주주총회를 앞둔 현대모비스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시할 중장기 비전과 주주 환원 정책이 주주를 설득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대모비스 주주를 설득시킬 수 있는 가시성이 높은 성장 비전과 주주 환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존속 모비스의 핵심 부품사업은 삼성전자, LG전자의 자동차 부품사업과 동일한 사업모델로 자동차그룹 최상위 회사로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가총액, 수익성, 재무구조가 요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문호 기자 kmh@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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