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의약품 도매업체, '의약품 카드 결제' 놓고 충돌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업체 간 '카드 결제' 갈등이 커지면서 제약 유통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제약사에서 약을 구매할 때 '현금 결제'를 해온 도매업체들이 카드 결제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제약사들은 여전히 현금 결제를 고집하면서 양측 간 충돌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유한양행 대표)과 조선혜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은 오는 27일 상견례 겸 카드 결제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갖는다.

앞서 유통협회는 각 제약사에 '의약품 대금 수금 시 카드 결제 시행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 도매업체에 대한 카드 결제 수금을 요청했다. 여신전문금융법의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 한다'라는 규정을 제약사가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동안 제약사는 도매업체와의 거래에서 관행적으로 현금·어음 결제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런 오랜 관행을 깨고 유통협회가 카드 결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마진' 때문이다. 도매업체는 약국과 병원에서 카드 결제를 받고 있는데, 대금 결제기간에 따른 비용 할인과 카드 결제 수수료(평균 2.2%)를 포함해 4%의 고정 비용 지불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제약사가 카드 결제를 수용할 경우 결제 금액의 일정 부분을 포인트로 받아 수익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약사법 시행규칙은 금융회사가 신용카드 또는 직불카드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지급하는 경우에만 1% 이하의 포인트를 허용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의약품 거래량과 금액, 대금 결제 방식 등 조건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카드 결제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거래 금액의 2.0~2.5%인 카드 수수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상장 제약사들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9.7%로 한 자릿수에 불과한데 카드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경영에 상당한 타격이 된다는 것이다. 동아에스티,동국제약 등 일부 제약사만 카드 결제 방침을 정한 상태다.

특히 기업간 거래에 협회 차원에서 대응한 것을 두고 불만이 나온다. 지난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이정희 이사장이 '셀프 질의응답'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 이사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생각했던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며 의약품 카드 결제 문제를 꺼냈다. 그는 "유통협회가 각 제약사에 공문을 보내서 이렇게(카드 결제) 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무리다. 상거래상 개별 업체 일대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협회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되 제약업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부분은 수용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며 "각 회원사가 현명하게 대처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협회가 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자칫 협회 차원의 거부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이재국 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협회가 나서서 (카드 결제가)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거래상 일대일로 논의할 일이니 협회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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