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던바 지음 / 김정희 옮김 / 아르테 펴냄 |
인류는 집단생활을 하며 뇌를 발달시켰고, 발달된 뇌는 역으로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회적 뇌 가설’을 통해 로빈 던바는 유명세를 얻었다. 1970년대 신출내기 연구원이었던 던바는 다윈의 “유기체는 자손들에게 자기 유전자를 물려주는 빈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아이디어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다윈의 위대한 통찰을 지렛대 삼아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인간의 뇌는 150명 이상의 정보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수렵채집민들의 생활양식에 주목했다. 인구 자료를 구할 수 있는 20여 개의 부족사회를 조사해 통계를 냈더니 친밀하게 주기적으로 성인식을 치르거나 샘물을 공동 소유하는 씨족 형태 집단의 구성원은 평균 153명이었다.
직접 실험도 했다. 친구들에게 연말에 성탄카드를 보내는 인원수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평균 68곳의 가정에 보냈다는 것이었고, 이들의 가족 수는 약 150명이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조직 이론은 직접 대면 업무를 할 수 있는 최대치를 150명 이하로 잡는다. 1950년대 이래 사회학자들은 150명 이상의 조직에서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공식적인 계층제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군대에서도 소대는 보통 30~40명, 중대는 130~150명으로 구성된다. 이는 로마군의 기본 단위인 보병 중대 130명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불과 몇 년 사이 인간의 관계 맺기 기술은 큰 변화를 맞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윈 시대 교제 범위의 시공간적 제약이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페이스북에는 수천 명의 친구를 거느린 소수가 존재하지만, 대다수는 친구의 수가 100~200명이라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3의 배수’ 법칙을 알려준다. 우리가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집단은 3~5명으로 이뤄진다는 것. 이보다 한 단계 위의 집단은 15명, 그다음 단계는 약 30명으로 구성된다. 12~15명 규모를 ‘공감 집단’이라 부르는데 신기하게도 배심원단, 예수를 따르던 제자, 스포츠팀이 모두 이 규모에 속한다.
인간의 수다와 뒷담화는 동물들의 그루밍(털 고르기)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가설도 소개한다. 유인원에게 그루밍은 몸단장이 아닌 상대에 대한 헌신의 표현이다. 남자의 대화가 주로 자기과시에 집중하는 것은 공작새 꼬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 여자가 나타나면 대화의 주제가 바뀌는 것이 그 증거다. 반면 여자들의 대화는 가까운 이들의 근황에 관한 것이 많다.
‘던바의 수’는 영장류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적 특성이 진화적 돌파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관한 적확한 증거다. 이 책은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승리는 왜 당연한 것이었는지, 셰익스피어가 진짜 천재인 이유는 무엇인지, 피는 왜 물보다 진한지 등의 궁금증에 관해서도 진화심리학을 통해 재치 있게 답해준다.
▶한반도 최초의 국민투표는 세종이 했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산책>
신병주 지음 / 매경출판 펴냄 |
절대왕정 시대로 기억되는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 세종은 토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을 추진하면서 최종적으로 백성들의 찬반 의견을 묻고자 했다. 투표 3년 전인 1427년 세종은 창덕궁 인정전에 나가 과거시험 문제를 내면서 공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등 세법을 확정하기 전에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430년 3월부터 5개월간에 걸쳐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세종은 “백성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했고, 백성 17만여 명이 참여한 이 투표는 9만8000여 명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인구를 고려하면 17만 명은 노비와 여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구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민초의 생활상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미시사와 거시사를 아우르며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찾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의 현재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으로 ‘현장성’을 꼽는다. 이 책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이 옮겨진 연유와 흔적, 1795년 정조의 화성 행차 배경과 8일간의 일정 등을 추적하며 과거와 현재의 마중물로서 역사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다. 500년 조선사가 던지는 화두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26호 (18.05.01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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