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 4건 보물지정 예고
이제 개국공신교서에 어보로 찍은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 문화재청 제공 |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일등공신 이제(李濟)에게 내린 '개국공신교서'가 국보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25일 '이제 개국공신교서'를 국보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비롯한 매장·환수문화재 1건과 전적(典籍), 불화 2건 등 총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392년(태조 1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일등공신 이제에게 내린 공신교서이다.
이제는 태조 계비 신덕왕후의 셋째 딸인 경순궁주와 혼인한 뒤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해 개국일등공신에 봉해졌다.
교서는 국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로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인 공신도감이 국왕의 명으로 신하들에게 발급한 녹권(錄券)에 비해 위상이 높다.
조선 초기의 개국공신녹권으로는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인 이화에게 내린 '이화 개국공신녹권' 1점이 국보 제232호로, 개국원종공신녹권 7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개국공신교서는 이번에 지정 예고된 '이제 개국공신교서'가 유일하다.
교서에는 이제가 다른 신하들과 큰 뜻을 세워 조선 창업이라는 공을 세우게 된 과정과 가문과 친인척에 내린 포상 내역 등이 적혀 있다. 또 끝부분에는 발급일자와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어보가 찍혀 있다. 이 어보는 1370년(공민왕 19년) 명나라에서 내려준 고려왕의 어보로 조선 개국 시점까지도 고려 인장을 계속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조선 최초로 발급된 공신교서이자 현재 실물이 공개돼 전하는 유일한 공신교서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제도사·법제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고 고려 말~조선 초 서예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수습 장면.(문화재청 제공) |
문화재청은 또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 4건을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의 사리공(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과 기단부에서 나온 유물이다.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사리봉영기와 함께 금동사리외호, 금제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 6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숙기 좌리공신교서'는 이숙기가 성종의 즉위를 보좌한 공로를 인정받아 1471년(성종 2년) 3월 순성좌리공신으로 책봉된 이듬해인 1472년(성종 3년) 6월에 왕실로부터 발급받은 공신증서이다.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문화재청 제공)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조선 세종때 집현전 학사를 지낸 이선제의 묘지로, 일반적인 사각형 형태의 묘지와 달리 2개의 넓은 사각의 태토판(질흙으로 만든 판)과 2개의 좁은 태토판을 좌우로 붙인 위패 형태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지장시왕도는 1580년(선조 13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화로 주존인 '지장보살과 무독귀왕, 도명존자'의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명부계를 다스리며 망자의 생전의 죄업을 판단하는 열 명의 시왕, 판결과 형벌 집행을 보좌하는 제자들을 한 화폭에 담은 불화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16세기 지장시왕도이다.
문화재청은 '이제 개국공신교서' 등 5건의 문화재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지장시왕도.(문화재청 제공) |
har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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